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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고통이 지속되면 ‘나는 탐욕·미혹 없는가’ 보세요”/화엄사 조실 종산스님










고통이 지속되면 ‘나는 탐욕·미혹 없는가’ 보세요” 



 
염화실에서 법을 청하다 화엄사 조실 종산스님
​​



인간사, 세상사 모든 일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당신과 관계를 맺고 사는


가족·친구·이웃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인연의 한가운데


당신이 있다









   
원로회의 의장 당시 청주 보살사에서 만난 종산스님. 불교신문 자료사진

 


태산이 무너졌다.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 “모든 사람이 나보다 낫다”라는 말을 화두 삼아, 법문 삼아. 한평생 수행자의 지침이 됐던 종산(宗山)스님이 늘 인자한 모습으로 중생을 제접하던 모습을 감추고 선원을 걸어 잠갔다. 지난 7월19일, 주석처인 청주 보살사를 찾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햇살은 강했다. 스님이 아침 예불을 올리던 자리에는, 온기가 남아 있지 않았다. 보살사 부처님께 참배를 마치고, 발길을 산 아래 보림선원으로 돌렸다. 보림이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그것을 잘 보호하고 간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중생을 위해 그 깨달음을 펼칠 것인가를 참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종산스님이 지은 보림선원은 어떤 의미일까. 보림선원은 무문관이었다. 문은 있지만 시봉 한명 이외에는 아무도 근접이 허락되지 않았다. “세상의 시비와 떨어져 있겠다”는 듯….


 


종산스님은 1924년생으로, 일제시대 의과대학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친구가 죽었다. 육신을 치료하는 의사의 길을 서원했지만, 그 길에는 한계가 명확했다. 마음의 방황을 겪으면 친구의 49재에 참석했던 스님은 목탁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출가를 하려면 호적을 파라”는 말에 스님은 망설임없이 호적을 파고 출가를 단행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효의 길이 아니었다. 현생의 부모를 잘 봉양하는 것보다, 만인을 깨우침으로 이끄는 스승이 되려는 큰(大)분발심이었다.


“큰스님께 불자들에게 전할 법문을 듣고자 왔습니다.” 시봉 보살에게 보림선원에 온 목적을 전하자 “스님께서는 최근 아무도 만나지 않습니다.”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도 스님께 한번 여쭤봐 주셨으면 합니다.”


종산스님은 한국불교 최고 어른 중 한분인 원로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당시 몇 차례 스님을 뵐 기회가 있었다. 원로의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청주에 갈 일이 있으면 보살사에 들렀다. 그럴때마다 스님은 기꺼이 시간을 내어줬다. “시간이 되는대로 수행하라”며 절 입구까지 나와 손을 잡아주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남의 흠을 보지 마세요. 항상 자신의 흠을 먼저 봐야합니다. 남의 흠을 먼저 보고 자신을 나중에 돌아보니 세상시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세수 80을 넘기던 해 만난 스님의 첫 마디가 하심(下心)이었다. 하심이야 말로 수행자의 자세일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꼭 지녀야 할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대를 한 적이 없다. 어린 아이에게도 존댓말을 한다. 그 마음을 일으킨 것은 수행자들에게 지금도 유명한 ‘대못 수행’을 하면서였다.


출가 후 종산스님이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수행할 때의 일화다. 종산스님은 도반 3명과 함께 잠을 자지 않고, 눕지도 않으면서 용맹정진을 했다. 그래도 몰려오는 잠을 어쩌지 못하자 널빤지에 못을 박아 앞에 세웠다. 잠시라도 졸면 이마에 못이 찔리는 것은 명약관화. 그렇게 20여 일이 지나 문득 도반의 이마를 봤다. 피가 나고 긁히고, 심지어 피가 얼굴 군데군데 엉겨붙어 있었다. 스님의 모습도 그 도반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터였지만, 도반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게 된 것이다.


“기가 막힌 모습이었어요. 한편으로 그 치열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가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 세상 모든 스님들 중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이 없고,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공부를 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마음 어딘가 깔려있던, 대학 공부까지 했다는 자만심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대분심·대의정·대발심이 일어났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는데, 한참을 지나 시봉이 선원에서 나왔다. “‘찾아와 줘서 고맙습니다. 법문은 이미 다 전해줬습니다’라고 전해 달라십니다.”


기자를 기억한 종산스님은 “이전에 했던 법문을 불자들에게 전하는 것으로, 먼 길 온 아쉬움을 대신하라”고 전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스님이 계신 곳을 향해 삼배를 올리고 다시 발길을 돌려 차가 주차된 보살사로 갔다. 아! 아까는 왜 보지 못했을까. 보살사에는 종산스님의 법문이 놓여 있었다. 대중 스님에 따르면 스님이 보림선원으로 들어가기 전 사찰 곳곳에 푯말을 세웠다고 한다. 푯말에는 스님이 절을 찾는 불자들에게 전하는 법문이 적혀 있었다.


“선남자, 선여인이여. 당신께서 어떤 문제로 인하여 고통과 불편함이 지속된다면 먼저 그 ‘문제의 일어남’에 대해 잠시 사유해 보기 바랍니다. 왜? 무엇 때문에? 어째서?… 이렇게 계속 반복하면 거기 끝에는 반드시 ‘나’에 대한 탐욕과 혐오, 미혹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불편과 고통을 소멸시키는 제일차 작업입니다.” 사찰 입구에서 시작된 푯말은 경내 곳곳에 다른 문구로 쓰여 있었다.


“인간사, 세상사 모든 일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당신과 관계를 맺고 사는 우리 가족, 우리 친구, 우리 이웃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그 인연의 한가운데 당신이 서 있다. 당신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도 다름아닌 더불어 함께 함 속에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종산스님은 고르고 고른 문구를 적어 경내에 기록함으로써 법문을 대신하고 ‘무문관’ 수행에 들어간 것이다.


스님이 불자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씀은 “하루에 5분이라도 참선을 해야 한다. 24시간 가운데 하루 30분만 수행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이 온다”는 것이다. “백천만겁을 윤회하는 가운데 사람 몸 받기가 가장 힘이 듭니다. 대통령이 되거나 고시에 합격하는 일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법을 만나는 인연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다행히 사람 몸을 받은 지금, 정법을 찾아 부지런히 정진하기 바랍니다. 아무리 바쁜 일상이라도 하루 5분 이상 명상하는 습관을 가지길 바랍니다.”(2010년 법문)


종산스님은 이미 법문을 다 하고, 보림의 세계에서 더 많은 중생을 구제할 수행을 하고 있다. 새로운 법문을 하기보다 “이미 말한 법문대로 실천하고 있느냐”는 질타로 불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있었다. 9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님이 직접 선원에서 ‘마지막 정진’을 하며 수행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태산이 무너진 줄 알았는데, 태산은 그대로 있었다. 오히려 더 많은 생명들을 품고 있었다.


■ 종산대종사는 … 


1924년 출생한 종산스님은 1948년 광주 자운사에서 도광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49년 고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전국의 선원을 돌며 수행에 매진했다. 1954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으며, 근현대 한국불교 최고의 선지식인 용봉, 전강, 동산, 경봉, 금봉, 청담스님 등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개심사 주지와 1988년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의장, 법제의장을 역임했으며 1990년 직지선원 조실로 주석했다. 1997년 조계종 최고의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원, 2004년 원로회의 의장으로 선출돼 2012년까지 역임했다. 2012년 제19교구본사 화엄사 조실로 추대됐다.


“늘 자비로운, 수행자의 표상”


■ 덕문스님이 본 종산스님


종산스님이 원로회의 의장으로 활동하던 시기, 사무처장을 7년간 역임한 팔공총림 동화사 전 주지 덕문스님은 “청렴하고 강직하면서, 바른 수행을 실천하신 분이다. 또 종단이 있어야 수행자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안정된다고 늘 강조하셨다”며 종산스님에 대해 전했다.


“수좌들이 찾아오거나 신도를 만날 때도 항상 가사와 장삼을 수하고 만났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하대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겸허한 모습은 수행자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할 것입니다.”


덕문스님은 “원로의장으로 계실 때 종단의 위상 정립에 특히 노력했다”고 전한다. 수행력과 품성에 따른 법계를 실시, 승단의 위계 정립과 수행풍토를 조성하고자 한 것. 또 수행자와 행정을 원활하게 연결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무엇보다 공부에 철저하십니다. 엄할 때는 정말 엄하지만, 늘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이런 어른들이 계셔서 한국불교가 성장하고, 수행자들이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건강을 회복하시고, 선원서 다시 나오셔서 중생들에게 큰 법을 다시 전해주시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덕문스님이 전하는 종산스님이다.


[불교신문3229호/2016년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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