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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태고종 승정원장 남파당 정수 대화상-④

학명당 계종(鶴鳴堂 啓宗)대선사

남파 대종사 법조부(法祖父)


​학명당 계종 대선사 진영

 

백학명 대선사의 행장을 일별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학명 대선사는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의 고승으로서 내소사·월명암 주지를 거쳐 내장사 주지를 지냈으며, 불도수련과 교리전도에 힘쓰고 반선반농(半禪半農)을 권했던 고승이다. 1867년에 출생해서 1929년에 원적에 들었다. 속성은 백씨(白氏)이며, 법명은 계시(啓示), 계명은 계종(啓宗), 법호는 학명(鶴鳴), 자호는 백농(白農)이다. 1867(고종 4) 전남 영광에서 출생하였다. 20세에 부모를 잃은 후 순창 구암사(龜巖寺)의 고승 설두(雪竇)화상의 설법을 들은 후 출가하였다.

영광 불갑사의 금화화상 상좌로 불가에 입문하여 벽송사·선암사·송광사에서 수도하고 34세에 구암사 불교강사직을 맡았다. 1914년 봄 중국과 일본의 사찰을 돌아본 후 귀국하여 변산 내소사와 월명암의 주지를 지내며 참선의 깊이를 다지고, 강론을 하였다.

 

1923년 내장산 내장사가 운영부실로 인해 곤란을 겪을 때 내장사 주지로 부임하여 극락보전을 중건하고, 선원을 새로 짓고, 부도전을 옮기는 등 불사를 하였다. 내장사에 있는 동안 젊은 신도들을 모아 불도수련과 교리전도에 힘썼으며, 제자와 불자들에게 참선과 노동(농사)을 병행할 것을 권하는 반선반농(半禪半農) 사상을 가르치고 스스로 호()를 백농(白農)이라 지었다. 원적가(圓寂歌왕생가(往生歌해탈곡(解脫曲참선곡(參禪曲) 등의 불가(佛歌)를 지었다. <두산백과>에 소개된 백학명 선사의 간단한 약력이다.


<남파집>에 소개된 학명선사의 생애’에 대한 소개를 보면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양친과 아우를 돌봐야하기에 모필(毛筆)제조 기술을 습득해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붓 상자를 메고 각처를 방랑하다가 순창 구암사에서 깊은 감화를 받아서 향리인 불갑사에서 환송장로에게 축발하였고, 금화(錦華)선사에게 수계하였으며 몇 달 후에는 금화선사에게 은계사(恩戒師)를 겸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금화선사에게 건당 입실까지 하였다고 한다.

 

학명선사가 원적 직전에 그린 친필

절노도강달마상.      

 

 이로써 백파선사(白坡禪師)로부터 7대 법손이 되었다. 이때 받은 법호가 학명(鶴鳴)이다. 백파긍선(白坡亘璇)1767(영조43) 411일 전북 고창 무장현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전주 이씨이며 부친은 송계 이종환으로 선조(宣祖)의 부친인 덕흥대원군의 10세 손이며 모친은 김해 김씨이다. 스님은 1784(정조8) 18세 되던 48일에 시헌장로를 은사로 출가하여 연곡화상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24세 때 1790(정조15) 9월 그믐에 지리산 영원사에서 당시선..율을 겸비한 화엄종장인 설파상언선사(1707~1791)의 수계산림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선배스님들과 함께 참여하여 설파선사로부터 구족계를 받고 직접 화엄경을 배우고 서래종지를 지도 받게 된다. 법통은 설파의 법손인 설봉의 뒤를 이었다.  백파스님은 26세의 나이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학인들을 가르쳤다.

설파선사는 휴정서산대사의 정맥을 이은 조계종문의 적손으로 화엄경에 있어서는 타에 추종을 불허한 1인자였다. 하지만 백파선사가 25세 때 설파선사는 85세를 일기로 입적한다. 영원사에 남아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수행하고 있을 때 백양사 조실스님으로부터 청장을 받게 된다. 이 때 백파스님의 나이 261792(정조16)에 강사로써 운문암에서 100명의 학인을 가르치게 된다.

30세 되던 해 구암사에서 행자에게 사미계를 설해 주므로 율사로도 첫 발을 딛게 된다. 이러한 스님의 강중생활은 계속 이어지고 49세가 되던 1815(순조15) 가을에 법의 진실한 뜻이 문자에 있음이 아니고 지혜 오득하는데 있음을 깨닫고 강중을 떠나 초산(정읍의 고칭) 용문동에 들어가 8년간 습정균혜(習定均慧)하였다. 스님께서는 다시 55세에 금강산 오대산 등 명산을 찾아 선림을 참방하여 명안종사를 찾고자 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56세인 1822(순조22)에 옛집(古廬) 운문암에 돌아와 여러 법려(도반)와 함께 수선을 위한 결사체를 조직하고 수선결사(修禪結社)를 결행한다.

그리고 수선결사하신 조선 후기 유교사회는 유생들의 불교 탄압이 극심하여 도시 인가주변의 사찰과 재산은 모두 빼앗기고 산중에 은거한 수행자들은 자기위상에 안주하여 선의방향을 잃은 시절 이때 수행은 상근기자 만의 수행이 이어지고 중, 하근기자는 수행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수선결사 후 <선문수경(禪文手鏡)>을 저술하였다. 삼종선은 한 세기에 걸친 논쟁으로 수행 처에는 삼종선의 새로운 선풍이 일게 되는데 백파스님은 1852(철종3) 424일 백암산 뒷자락 구암사 화장대에서 세수는 86세 법랍은 68세로 입적하신다.

이제 학명선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학명선사는 이처럼 휴정선사(서산대사)...설파선사-백파...설두-금화 선사의 법맥을 잇게 되고 학명선사는 매곡에게 전법하였으며, 남파스님은 매곡의 법을 이어서 법통이 이어져서 남파당 정수 대종사 문도회까지 역사가 쌓이는 것이다


 학명선사는 처음엔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190232세 시에는 사교입선(捨敎入禪)하여 십여 년간 몇 개의 포단(蒲團=조선방석)이 헐도록 정진 진력하여 불조(佛祖)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를 얻었다고 한다.


그때 읊은 오도송이

 

전생수시아(前生誰是我:전생에는 누가 이 나이며)

내세아위수(來世我爲誰:내세에는 내가 누가 될 것인고)

현재시지아(現在是知我:현재에 이 나인 줄 알면)

환미아외아(還迷我外我:돌이켜나 밖에 나를 알지로다).

 

: 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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