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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불교성지를 가다(인도)⑺ - 부처가 무여열반에 든 쿠시나가르

 














▲ 고타마 붓다가 마지막 잠든 터에 세운 열반당.     © 매일종교신문












▲ 쿠시나가르 열반당에 모셔진 부처의 열반상.     © 매일종교신문


고타마 붓다가 45년간의 설법을 끝내고 고향인 카필라와스투로 가던 중, 이곳 쿠시나가르 사라쌍수(雙樹) 아래서 빠리니르바나(Parinirvana 般涅槃반열반)에 드셨다. 고타마 붓다가 이 세상에서 성취한 것은 유여열반(有餘涅槃)이고 죽음으로써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쿠시나가르에서 돌아가신 것을 반열반(무여열반)이라고 표현했다. 고타마 붓다는 숨을 거두는 순간, 삼사라(Saṃsāra संसार 輪廻), 카르마(Karma कर्म 業)와 환생(還生)에서 자유로움은 물론 온(蘊khandhas)의 해체를 통해서 영원한 해탈을 이뤘다는 의미이다. 불교철학에서 이 온(蘊)의 이론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이란 이 온(蘊)의 가합(假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한다.
 
《반야심경》에서 오온개공(五蘊皆空五蕴 पञ्च स्कन्ध,pañca skandhas)이란 말 이 있는데, 판차 스칸다(Pañca Skandhas)인 오온(五蘊)은 인간 몸체와 정신의 구성요소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말한다. 오온이 개공(皆空)이란 뜻은 결국은 인간=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공(空)=중도(中道)=무아(無我)=연기(緣起)는 한 뿌리에서 출발한 다른 이름일 뿐이다. 대승불교의 중관(中觀).유식(唯識)사상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발전된 사상의 발전적 흐름이다. 그러므로 고타마 붓다의 죽음은 단순한 육신의 소멸로서의 없어짐이 아니고 무여열반의 성취로서 상주불멸(常住不滅)의 보편(普遍)의 존재로 승화되었다. 여기서 불교는 죽음과 삶이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사상의 종교가 되었고, 부처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존재하는 법신불(法身佛) 사상으로 발전되어서 인도 밖의 세계종교로 전파되었다.
 
고타마 붓다는 인간으로서 나이가 들어 고향으로 향하던 중, 뜻하지 않게 육신의 기력이 다하여 말라 족의 수도였던 이곳 쿠시나가르에서 영원히 잠이 들었던 것이다. 바이살리에서 한 설법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지막 설법이 되었고 고타마 붓다는 세수 80세 법랍 51세 설법 45년의 생애를 이렇게 마감한 것이다.
 
현재의 쿠시나가르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의 동쪽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로서 룸비니가 그리 멀지 않는 네팔 국경 가까이에 있는 고락푸르(Gorakhpur)시에서 5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붓다 시대에 쿠시나가르는 말라 족들의 수도였는데, 라자가하(왕사성)와 카필라와스투의 중간 지점이었다.《앙굿따라 니까야Aṅguttaranikāya 增支部》에 의하면, 쿠시나가르는 고타마 붓다 시대, 인도의 16대국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든 지점은 조그마한 타운이 있는 정글 지역이어서, 아난다는 고타마 붓다께, 왜 이런 곳에서 열반에 드시느냐고 아쉬워했지만, 후세에 고타마 붓다께서는 세 가지 이유로 이곳에서 열반에 들게 되었다고 해석한다.  














▲ 그레코(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간다라(2-3세기CE)에서 조각한 부처의 반열반상.     © 매일종교신문












▲ 인도 아잔타 석굴에 있는 부처의 열반상.     © 매일종교신문


고타마 붓다가 이곳에서 열반에 든 세 가지 이유로서 첫째는《마하 수다싸나 수타 Maha Sudassana Sutta》경을 설하기에 적당한 곳이고, 둘째는 마지막 제자인 수바다(Subhadda)가 와서 법문을 듣고 비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며, 셋째는 바라문 도하(Doha)가 이곳에 와서 사리분배에 대한 교통정리를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고타마 붓다의 열반을 묘사한 남방 빨리어 경전은《마하빠리닙빠나 수따 Mahaparinibbana Sutta 大般涅槃经》이고, 대승불전 漢譯에서는《마하빠리니르바나 수투라 大般涅槃經》이다.
 
고타마 붓다는 쿠시나가르에서 최후의 숨을 거두기 전, 생전에 이곳 말라 국의 수도인 쿠시나가르에 들른 적이 있었다. 고타마 붓다는 쿠시나가르를 배경으로 두 개의 《쿠시나라 수타(Kusinárá Suttas)》경을 설했고,《킨티 수타(Kinti Sutta)》경을 또 설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타마 붓다 생전에 이 지역 사람들은 성격이 강렬하고 거칠어서 쉽게 교화되지 않았지만, 고타마 붓다에게는 음식을 공양하고 존경의 예를 표했다고 한다. 고타마 붓다 열반 후에 말라 족들은 고타마 붓다가 화장된 다음 구슬사리보다는 재와 흙이 섞인 유해의 잔재를 전해 받아 이곳에 봉안하고 탑을 세웠으며 모두들 불교로 개종해서 승원과 비구들이 오랜 세기동안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을 전승했다고 한다.

고타마 붓다가 반열반에 들자 사방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었고, 고타마 붓다는 화장(火葬)되었고, 고타마 붓다의 사리(Śarīra 舍利)는 팔왕분골(八王分骨)이라고 해서 여덟 명의 왕들이 나누어 봉안했다고 한다. 말라 국의 말라 족도 8분의 1양을 분양받았는데, 후에 이곳에 승원을 세우고 사리탑을 건립했다고 한다.
 














▲ 고타마 붓다의 법신(法身)을 화장한 곳에 서있는 스투파(탑).     © 매일종교신문


중국 당나라 현장법사가 7세기 이곳을 순례했을 때, 고타마 붓다가 최후를 맞이하고 장례식을 봉행했던 곳에 고타마 붓다 사리탑 사원을 목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고타마 붓다가 최후를 맞이하고 장례식이 봉행된 승원과 탑이 있던 유적.     © 매일종교신문












▲ 고타마 붓다 사리를 분배했던 장소.     © 매일종교신문


고타마 붓다의 사리(Śarīra शरीर)는 탑을 세워 봉안하게 되었고, 사리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고타마 붓다의 몸을 화장 한 후에, 진주나 수정 구슬처럼 생긴 결정체가 많이 남게 되었다고 하며, 쿠시나가르의 말라 족은 붓다의 구슬 사리보다는 타고남은 재(灰)를 차지했고, 마가다의 아잣타사투 왕을 비롯해서 코살라 국과 바이살리의 밧지 족들이 구슬사리를 이운(移運)해 가서 사리탑을 세웠는데, 사리분배를 두고 전쟁까지 날 뻔 했으나 바라문 도하(Doha)의 중재로 팔분(八分)되었다고 한다. 이후 아소카 대왕은 인도를 통일하고 고타마 붓다의 사리를 전부 수거하여 8만 4천개의 사리탑을 세웠다고 하며, 현재까지 가장 확실하다고 믿어지는 고타마 붓다의 송곳니가 스리랑카 캔디 왕궁사원에 봉안되어 있다.
  














▲ 고타마 붓다의 치아사리가 봉안된 캔디 왕궁사원.     © 매일종교신문












▲ 파키스탄의 페샤와르 카니슈카 탑에서 나온 고타마 붓다의 사리, 버마 만달레이의 한 사원에 봉안되어 있다.     © 매일종교신문












▲ 태국 상가라자(승왕)가 봉안하고 있는 고타마 붓다의 사리.     © 매일종교신문

고타마 붓다의 사리는 불상(佛像)이 출현하기 전, 사리탑에 봉안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기능해 왔었고, 지금도 고타마 붓다의 분신(分身)이라는 신앙적인 의미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타마 붓다에 대한 어떤 형상으로서의 숭배는 기원 1세기 간다라에서 부터다. 신인동형(神人同形)의 불상이 출현하기 전에는 고타마 붓다의 족적(足跡)이 먼저 등장했다.
  














▲ 고타마 붓다의 족적(足跡) 간다라(기원후 1세기).     © 매일종교신문

 
고타마 붓다의 족적 시기를 지나서 바로 불상이 등장했는데, 서북인도의 간다라Gandhara) 와 북부 인도의 마투라(Mathura)지역이었다. 고타마 붓다의 아이콘(像) 신앙은 사리탑-족적-불상 순으로 발전되었는데, 고타마 붓다에 대한 존경과 숭배는 고타마 붓다의 말씀인 경전이었다. 빨리어 경전은 암송(暗誦)에 의해서 구송(口誦)으로 전승(傳承)되고 있었다. 특히 전승의 주역은 출가 공동체의 멤버들인 비구들이었는데, 붓다와차나(Buddhavacana)라고 하는 ‘붓다의 말씀’에 집중했다. 고타마 붓다가 쿠시나가르에서 최후를 맞는 순간, 아난다가 이제 제자들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느냐고 묻자, 자신의 담론(談論)인 ‘법(法Dhamma)’에 의지하고 스스로 등불이 되도록 유계(遺誡)를 내린바 있어서, 승가에서는 전통적으로 어떤 형상에 대한 숭배사상보다는 ‘붓다의 말씀’에 비중을 두어 온 것이다.
 
하지만, 일반 불교도들에게는 사리탑이나 족적은 경전보다도 더 현실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발전했다고 봐야 하겠으며,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점령으로 그리스문화와의 접촉을 통해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의 북인도 공격으로 그레코-박트리아와 인도-그리스 왕국들의 출현이다. 그레코-불교예술이 발전되고 간다라 불교조각에 그리스의 예술적 기교 영향이 나타나게 된다.
 














▲ 기원 후 1세기경 제작된 그레코-간다라 불상.     © 매일종교신문


그리스 조각의 특징인 파상(물결)의 머릿결이라든지 양어깨와 발과 신발까지 덮고 가리는 장식과 잎(葉)장식인데, 이것은 열반을 상징하는 조각상의 예술성의 표현이었다. 그레코-불교의 혼합주의라고 표현하는데, 이 혼합주의는 조각예술만이 아닌 사상의 혼합까지도 있었다고 보는데, 대승불교의 출현은 그레코-불교의 혼합주의가 다소 영향을 미쳤다는 서구 불교학자들의 학설이 대두되고 있다. 여기서는 더 이상의 전개는 하지 않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연구라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필자는 ‘그레코불교와 실크로드(계간 「시와 세계」)‘라는 논문을 통해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쿠시나가르는 수 백 년 동안 역사에서 묻혔다가 동인도 회사의 한 간부였던 부차난(E. Buchanan)에 의해서 발견되었고, 1854년 윌슨(H.H.Wilson)의 측량조사로 확인되었고, 1861-1862년 브리티시 인디아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험의 확인 작업을 거쳐서 1904-1906년 보겔(J.Ph.Vogel)의 영도 하에 발굴되어 세상에 공개되었다. 현재는 불교 4대 성지로서 세계불교도들의 필수 코스가 되어 있다.
 
인간에게 태어남과 죽음은 가장 큰 일이다. 물론 코타마 붓다에게는 생사를 초월한 어떤 깨달음이 더 중요한 것처럼 이해되고 있지만, 출가 제자나 재가 제자들에게는 고타마 붓다의 열반은 슬픔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항상 슬픔 속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고, 붓다의 분신으로서 사리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붓다의 살아있는 형상 대신 사리숭배로서 만족을 느꼈다. 이런 연유로 사리숭배는 고타마 붓다 숭배 그 자체인 신앙으로 발전되었고, 한 때 인도 전역에 사리탑을 세워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신앙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동시에 붓다의 족적(足跡) 또한 사리신앙 이상으로 숭배되었다가 그리스 식 간다라 조각예술의 영향으로 이미지화한 아이콘으로서 불상(佛像)이 출현하게 되었다.
 
불상은 인도 이외의 나라로 전파되면서 경전과는 달리 각 나라의 문화 예술성에 영향을 받아서 모습이 약간씩 변모하게 된다. 인도나 실론의 불상과 버마나 태국의 불상을 비교한다든지, 아니면 중국 한국 일본의 불상을 비교해 보면 현격한 차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경전은 인도찬술의 원형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중앙아시아나 중국에서는 붓다가 인도에서 설했던 것처럼 문학작품을 만들어 냈다. 특히 중국에서는《능엄경》《원각경》《대승기신론》《금강삼매경》등을 저작했다. 인도 찬술은 아니지만, 인도에서 찬술된 것 이상으로 내용은 매우 고차원적이다. 이 문제는 원형경전성립에 대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불교사상사적인 면에서 점점 수용되고 있음 또한 특기할만한 일이다.
 
불교가 어떤 한 나라에 수용되어서 끝까지 순탄하게 지속되는 경우가 쉽지 않다. 중앙아시아에서 불교는 유적만 남아있고, 중국에서도 몇 차례 법난(法難)을 당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에서 억불(抑佛)의 시련을 겪었고, 일제치하에서는 왜색불교(倭色佛敎)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의 근대불교가 1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상화의 길을 향한 진행형이다. 이럴 때 불교의 원형을 생각하게 되고, 고타마 붓다 시대의 승가와 말씀에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태동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고타마 붓다와 직접 관련된 불교성지가 어필되고 고타마 ‘붓다의 말씀’에 불자들의 관심은 고조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남방불교의 명상과 초기불교사상이 뜨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불교 1천 7백년사에서 불교의 여러 사상이나 명상이 소개되어 왔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런 사상이나 명상수행 전통이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리자, 현대인들은 또 다시 찾아나서는 것이다. 불자들은 불교성지를 순례함으로써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려는 신앙적 의지를 다지고 어떤 영감을 얻으려는 소박한 종교 심리에서 성지순례라는 신앙 또는 수행의 한 과정으로서 고타마 붓다와 관계된 불적지(佛跡地 )를 찾게 되는 것이다. 쿠시나가르는 열반사상이나 정토사상과의 관련 속에서 불자들에게 더욱 종교적 의미 부여가 되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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