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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불교성지를 가다(인도)③ 부처의 상수제자들,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와 영산회상

 













▲ 부처가 아타나티야 경(Atanatiya Sutta 佛說毘沙門天王經》을 설한 영취산 독수리 봉(Griddhraj Parvat 기사굴산 耆闍崛山).     © 매일종교신문












▲ 붓다 동굴, 영취산 독수리 봉 아래에 있으며, 고타마 붓다는 3년간 3개월씩 이곳에서 명상하며 제자들을 지도했다.     © 매일종교신문












▲ 부처가 염화미소(拈華微笑)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불법의 진수를 보이신 영산회상(靈山會上)(2011년). 앉은 순서 좌로부터 정념스님(조계종 종회의원), 보선스님(대흥사 조실), 진월스님(동국대경주), 뒤에 서 있 는 필자(좌측)와 염정호(광주국제영화제 상임이사).     © 매일종교신문

 
고타마 붓다는 녹야원에서 첫 안거(安居)를 보내고, 라자가하(왕사성)로 가기 전에,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이룬 보드 가야의 네란자라(Nerañjarā) 강둑인 우루벨라(Uruvelā)란 곳으로 향했다. 라자가하(현재 라지기르)로 향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이 근처에는 우루벨라 카사파라는 불(火)을 숭배하는 장발 신선(神仙) 3형제가 약 1천여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이곳에서 수행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큰 형인 우루벨라 카사파(Tebhātika-Jatilas)는 500여명의 제자와 우루벨라에, 가운데인 나디 카사파(Nadī-Kassapa)는 3백 명과 함께 강가에 그리고 막내인 가야 카사파(Gayā-Kassapa)는 2백 명을 거느린 수행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고타마 붓다는 밤에 우루벨라 카사파의 장소를 방문해서 신성한 화로(火爐) 터로 알려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우루벨라 카사파가 그곳엔 독룡(毒龍)이 살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고타마 붓다는 밤에 법력(法力)을 사용하여 이 독룡을 굴복시켰다. 그러자 우루벨라 카사파는 감탄하면서 그의 음식을 공양했다. 고타마 붓다는 이곳에서 며칠간 더 머물렀다. 그리고 이후에도 몇 가지 법력을 더 보여줬다. 그러자 우루벨라 카사파는 드디어 코타마 붓다에게 불의 숭배를 버리고 고타마 붓다 승가로 개종(改宗)했다. 교법(敎法 사성제 등)을 설하고 머리를 깎도록 했다. 그의 5백 명의 제자들도 차례로 고타마 붓다에게 귀의하여 고타마 붓다 승가(공동체)의 제자가 되었고, 다른 두 형제 카사파들도 무리와 함께 귀의했다.
 
고타마 붓다는 가야(Gaya) 市 근교의 가야시사Gayāsīsa)란 곳에서 카사파 3형제와 1천명의 비구와 살았는데, 그들에게 일체는 불처럼 타고 있다는 불에 비유한 ‘불의 법문’《아디따빠리야야 경Ādittapariyāya Sutta》을 설했다. 고타마 붓다는 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법문을 하였고, 이 내용은 불교 심리학인 아비담마의 내용이었다. 제자들은 모두 지혜가 열렸고 진정한 사문이 되었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지만 고타마 붓다의 사촌이었던 데바닷타가 이곳 가야시사에서 5백여 명의 비구들을 꾀어서 반기를 들고 승단을 별도로 만들었는데, 빔비사라 왕을 축출한 아들 아잣타사투 왕이 데바닷타를 위해서 이곳에 큰 사원을 지어 준 곳이다. 고타마 붓다는 카사파 3형제를 비롯한 비구들과 함께 수도 라자가하(왕사성)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마가다의 수도 왕사성에서 고타마 붓다가 제자들과 함께 온 다는 소식을 들은 빔비사라 왕은 신하들과 함께 성문 밖까지 영접을 나왔다.
  













▲ 빔비사라 왕이 공원으로 사용하던 죽림을 고타마 붓다에게 승원으로 헌증한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베누 와나 Venu Vana).     © 매일종교신문












▲ 고타마 붓다는 왕사성 시내에 탁발을 갔다 와서 이 죽림정사 연못에서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잡고 설법을 하셨다(필자촬영 2011년).     © 매일종교신문


빔비사라(Bimbisara 558–491BCE)는 마가다의 왕으로 50년간 재위했다. 빔비사라 왕은 고타마 붓다의 보호자였고 친구였다. 그는 동부의 앙가(Anga) 왕국을 병합했고 라자그리하(Rajagriha)의 새 왕도(王都)를 건설했다. 왕사성은 다섯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로서 기원전 천 년 전부터 왕도였다. 지금은 라지기르로 부르지만 고대시대에는 라자가하 또는 라자그리하로 불렀다. 빔비사라 왕은 아들 아잣타삿투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바 있다.
 
아잣타사투 왕은 마가다의 수도를 파탈리푸트라(현 파트나)로 천도하고 영토를 넓히고 불교를 장려했다. 불교경전에 따르면 빔비사라 왕은 고타마 붓다가 성도(成道)하기 전, 왕사성에 처음 왔을 때 만난 적이 있었다. 빔비사라 왕은 고타마 붓다의 설법을 듣고 틈틈이 수행한 결과, 4단계의 깨달음 가운데 첫째 관문인 수다원(Sotapanna)인 예류(預流=入流)의 단계를 완성했다고 한다. 빔비사라 왕은 고타마 붓다에게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를 헌증했다.
 
고타마 붓다가 라자가하를 방문할 때 두 명의 위대한 수제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최초 5비구 가운데 한 사람인 아싸지(Assaji)의 설득으로 다른 수행단체 소속이었던 사리뿌따(Sariputta사리불)와 목갈라나(Moggallāna 목련)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고타마 붓다의 상수제자(上首弟子)가 된다. 고타마 붓다는 이들과 함께 최초의 사원 죽림정사에서 3년간 안거를 보내게 된다. 마하 카사파(Mahākassapa 대가섭, 보드 가야 3형제 카사파와 다름)또한 이곳에서 만나게 되고, 영취산 독수리 봉 아래서는 함께 3년간 3개월씩 우기동안 하안거를 했고 명상수행을 하면서 염화미소로 고타마 붓다의 심인(心印)을 마하 카사파에게 전수 했다. 사실성(史實性)을 떠나서 이 전설은 중국 선종불교(禪宗佛敎)의 상징이 되었다. 이밖에도 대승 권에서는 부처님이 이곳 영산회상에서《반야심경》과《법화경》을 설했고,《능엄경》과《금강경》까지도 설했다고 하지만, 영취산은《법화경》의 무대가 되고 있다.
 













▲ 중국선종불교에서 선종 초조로 추앙받는 대가섭의 목판화.     © 매일종교신문

 













▲ 마하 카사파(대가섭)의 열반도, 중국 신장 키질 동굴벽화.     © 매일종교신문


고타마 붓다가 왕사성 죽림정사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낼 때, 아버지인 숫도다나(Suddhodana 정반왕) 왕은 아들이 자각(自覺)을 했다는 소문을 듣고, 10명의 대표단을 파견해서 카필라와수투(Kapilavastu)로 돌아올 것을 요청했다. 9번째까지 보낸 대표단은 부왕의 메시지 전달에 실패하고 모두 승가에 귀의하여 비구가 되었다. 그리고는 수행하여 다들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열 번째 대표단을 이끌고 간 사람은 고타마 붓다의 어릴 때 친구였던 칼루다이(Kaludayi)인데, 그도 비구가 되어 나중에 아라한이 되었지만, 부왕의 메시지는 고타마 붓다에게 직접 전달할 수가 있었다. 고타마 붓다는 성도 2년 후인 어느 날, 비구들과 도보로 두 달 걸려서 사카족이 사는 자신의 고향인 카필라와수투에 도달했다.
 
비구들이 걸식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숫도다나 왕은 고타마 붓다에게 접근해서, “우리집안은 전사(戰士) 계급의 혈통을 갖고 있다. 전사는 홀로 음식을 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에 붓다는 “걸식하는 것은 아버님의 왕실 혈통은 아닙니다만, 붓다 혈통의 관습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숫도다나 왕은 모든 비구들을 왕궁으로 초청해서 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들었다. 이후 숫도다나 왕은 예류과에 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기간에 많은 수의 왕실 사람들이 승가에 들어왔는데, 사촌인 아난다와 아누루다는 십대제자에 들 정도로 유명했고, 7세 된 아들 라훌라(Rahula)도 사미가 되어 나중에 십대제자에 올랐으며 이복동생 난다(Nanda)도 비구가 되어 아라한과를 얻었다. 고타마 붓다의 가장 상수 제자들은 사리뿌따. 목건련. 마하 카사파. 아난다 .아누루다였고, 십대제자에는 우빨리. 수부티. 라훌라와 푸나가 포함된다. 고타마 붓다는 왕사성 기사굴산(독수리 봉) 아래의 동굴에서 2,3,4차 안거를 보냈고, 이후에도 8안거를 왕사성 죽림정사에서 보냈다. 다섯 번째 안거는 베살리(바이샬리)에서 맞이했다.
  













▲ 고타마 붓다께서는 죽림정사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온천에서 가끔 목욕을 하셨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이 온천욕을 하고 있다(필자촬영 2011년).     © 매일종교신문












▲ 마하 카사파의 주도로 5백 명의 아라한이 칠엽굴에 모여 고타마 붓다 45년간의 설법을 구송(口誦)으로 결집하였다.     © 매일종교신문


왕사성은 불교역사에서 성지로서의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빔비사라 왕이 헌증한 최초의 불교사원이 있고, 중국선종불교의 기원의 상징성을 갖는 영산회상과 코타마 붓다 열반 후에 마하 카사파의 주도로 최초의 불전결집이 이루어진 칠엽굴(삿따빠니Sattapanni Cave) 등이 있는 고타마 붓다와 상수제자들의 숨결이 스며있는 불교성지다. 고타마 붓다가 열반에 드신지 3 개월 후에 아잣타사투 왕의 후원아래 제1차 불전결집회의가 이루어졌는데, 이 회의에서는 주로 고타마 붓다께서 승가 공동체의 규율인 율장(律藏)과 교법을 설하신 경장(經藏)이 성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최초의 불전결집총회를 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고타마 붓다가 열반 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바다(Subhadda)라고 하는 비구가 이제 계율 같은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상수 제자인 마하 카사파의 주도로 결집회의가 개최된 것이라고 한다. 수바다 비구는 나이가 들어서 늦게 출가한 고타마 붓다의 열반 직전에 승가에 들어 온 비구였다. 늦게 출가했으면 더 모범을 보여야 함에도 스승의 부재를 이유로 규율을 해이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에 마하 카사파는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과 말씀하신 진리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껴, 결집총회를 개최했고, 이후 100년이 지나서 제2차, 200년 후에 아소카 대왕의 후원으로 제3차 경전결집이 이루어졌다.
  













▲ 자이나교의 손 반다르 동굴(Son Bhandar Cave)     © 매일종교신문


왕사성은 자이냐 교의 수행자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자이냐 교의 역사는 불교 보다 더 오래되었다. 제23대 티르탄카라(최고 정신적 수장의 지위, ‘나루를 건넌 자’)인 파르스바((Pārśva 877–777 BCE)가 실존 인물로 확인된 것에서 자이냐 교의 역사를 짐작할 수가 있다. 고타마 붓다 보다 먼저 태어난 제24대 티르탄카라인 마하비라(Mahavira(महावीर 599 BCE–527 BCE)는 사실상 자이냐 교의 개혁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다. 마하비라는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그는 바이샬리에서 태어나서 주로 고타마 붓다의 영역과 겹치는 지역에서 활동했다. 그러므로 사르나트 라지기르 바이샬리 등지에는 자이냐 교의 성지도 불교성지와 공존하고 있다.
   













▲ 부처가《법화경》을 설한 영취산 정상에 일본산 묘법사 창종 주(主) 니찌닷추 후지 스님이 마하트마 간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69년에 완성한 샨티 스투파(평화탑).     © 매일종교신문


일본불교에서《법화경》을 소의(所依)로 하는 법화계열의 신생종파인 일본산 묘법사를 창종한 니찌닷추 후지(藤井 日達1885–1985) 스님에 의해서 1947년부터 평화탑 건립운동이 시작된다. 그는 1931년 마하트마 간디(인도독립운동가 1869–1948)를 만나서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감동하고, 평생 무저항 주의운동에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결정적인 것은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다음, 그는 세계도처에 평화탑을 건립해서 불교정신에 의한 세계평화운동을 실현한다는 목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고, 1947년부터 영취산 정상에서 시작한 평화탑을 마하트마 간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69년에 완성했다. 이후 그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현재까지 세계도처에 80개의 평화탑을 건립해서 세계평화운동에 기여하고 있다.
 
왕사성은 불교 8대 성지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대만의 불자들은 이곳 영취산의 독수리 봉인 영산회상(靈山會上)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이곳을 참배한다. 선종불교에서는 보드 가야와 영취산 독수리 봉을 꼭 보고 싶어 하는 까닭은, 보드 가야는 깨달음의 장소였고, 영취산은 염화시중(拈華示衆)으로 부처가 가섭에게 심인(心印)을 이심전심으로 전한 상징성 때문이다. 일본의 법화계열 종파에서는 부처가 이곳 영취산정에서《법화경》을 설했다는 믿음 때문에 다른 불교성지보다도 더 선호한다. 그렇지만, 이런 이유를 떠나서라도 영취산은 고타마 붓다가 직접 토굴에서 명상을 했고, 자주 이곳 산정에 와서 머물렀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선종불교 이전의 중국 동진 시대의 구법승 법현 법사는 그의《불국기》에서, 이곳 영취산을 방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고, 당나라 현장법사 또한 영취산을 찾았다고《대당서역기》에 기록하고 있다.
 
대개 불교성지를 찾는 세계 각 나라의 불자들의 성향을 보면, 그 나라 불교의 전통을 엿볼 수가 있다. 부처님과 관련된 불교성지가 다 성지로서의 상징성이 있지만, 각 불교전통에 따라서 반응은 조금씩 다르다. 세계 각 불교의 성지순례에 대한 성향을 보면 보드 가야와 룸비니는 공통적으로 다 참배하고 싶어 하는 성지다. 남방 상좌부 불교인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불자들은 사르나트(녹야원)를 의미 있는 불교성지로 생각하는 듯 했다.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전법포교(傳法布敎)를 의미 있게 보고 있으며, 최초의 5 비구에 의해서 승가(僧伽) 공동체가 형성된 데에 대한 관점인 것 같다. 부처님 승가가 결성된 후, 2천 6백년이 지난 지금도 남방 상좌부는 부처님 승가 공동체와 유사한 승가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볼 때, 승가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증좌일 것이다.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대만 등의 한역대승불교(漢譯大乘佛敎) 권은 룸비니, 보드 가야, 영취산, 날란다, 쿠시나가라와 스라바스티(사위성)를 꼭 참배하고 싶어 한다. 티베트 불교 권에서는 보드 가야와 날란다를 선호한다. 달라이 라마는 한동안 보드 가야의 티베트 사원에서 매년 1월에 특별법회를 개최할 정도로 관심을 집중했고, 보드 가야 대탑의 오체투지(五體投地) 수행자들은 거의가 티베트 라마(여승 포함)나 티베트 불교신자들이다.
 
중국의 한역(漢譯) 권 불자들은 날란다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현장법사가 이곳에서 16년간 공부한 날란다 대학 유적이 있고, 현장법사 기념관이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는 날란다 대학에서 후기 대승불교 교학과 밀교가 전수 되었다. 하지만 티베트 불교 개혁가 쫑가파(1357–1419)의 영향으로 깨달음에 치중하는 전통이 확립되어서 보드 가야를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 한국 불자들은 보드 가야, 영취산, 쿠시나가라, 사위성과 룸비니인 것 같다. 몽골불교인들은 인도보다는 오히려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 궁과 겔륵파 5대 사원을 더 순례하고 싶어 한다.
 
한국의 선종불교는 중국 숭산 소림사를 위시해서 3조 4조 5조사와 6조 혜능 대사나 조주 선사의 백림사를, 정토불교 전통에서는 구화산 오대산 보타낙가산과 서안 등지의 사원을 가보고 싶어 한다. 작년부터 날란다 국제대학이 라지기르에 문을 열어서 석.박사과정 20여명이 공부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전 하버드대 교수아마르티아 센(Amartya Kumar Sen 1933- )박사를 총장으로 초빙, 2020년까지 캠퍼스 모습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다음 회는 날란다 대학 유적을 가보고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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