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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서용석 박사의 웨딩(Wedding) 이야기-87 역사상의 유명한 결혼(2)

 

신라의 선화공주와 무왕


백제 무왕의 무덤

 


익산 미륵사지 탑

     

무왕(武王~ 641, 재위 : 600~ 641년 음력 3)은 남부여의 제30대 국왕이다. 성은 부여(扶餘), 휘는 장(), 아명은 서동(薯童) 혹은 일기사덕(一耆篩德)이다. 출생지는 전라도 익산이다. 법왕의 아들이라는 설과 위덕왕의 서자라는 설이 존재한다. 재위 기간 신라에 공세를 취하는 한편 고구려와 수나라가 각축전을 벌일 때 중립 외교를 펼쳤다.

왕권 강화를 위해 대규모 역사(役事)를 단행하였다. 630년에 백성을 징발하여 사비궁을 중수하였으며 익산에 별도를 경영하고, 장차 천도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또한 정실 왕후인 사택씨(沙宅氏) 세력의 지원으로 막대한 경비와 시간을 들여 익산에 남부여 최대 규모의 미륵사를 창건했다.

신라계 고려의 대법인 일연의 삼국유사에서는 서동 출신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익산 미륵사지 서탑 해체 중 금동사리함 명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기반으로 미륵사 창건이 선화공주가 중심이 됐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삼국유사2권 기이(紀異)편에 수록 된 설화에 의하면 서동은 신라 진평대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서라벌로 들어가 동네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며 동요를 지어서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짝을 맞추어두고,

서동 서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동요가 널리 퍼져 궁궐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노래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은 모든 관료들의 주장에 따라 공주는 먼 지방으로 귀양가게 되었다. 길을 떠나려고 할 때 왕후가 순금 한 말을 여비로 쓰라고 주었다. 공주가 유배지로 가는데 서동이 도중에 나타나 절을 하고는 자신이 모시고 가겠다고 하였다. 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지만 뜻밖에도 믿음직하여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따라오도록 하였고 또 몰래 정도 통하였다. 공주는 그런 뒤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동요의 내용을 진심으로 믿게 되었다.

하루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행차하던 중,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 이르렀다. 그때 미륵삼존이 연못 속에서 나타나자 왕은 수레를 멈추게 하고 경의를 표하였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였다.

이곳에 큰 절을 짓는 것이 진실로 제 소원입니다.(須創大伽藍於此地 固所願也)”

그래서 왕이 이를 허락하고 지명법사에게 가서 연못을 메우는 일에 대해 묻자, 법사가 신통력으로 하룻밤 만에 산을 무너뜨려 연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미륵삼존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고 전각과 탑과 회랑을 각각 세 곳에 만들고는 미륵사(彌勒寺)국사(國史)에서는 왕흥사(王興寺)라고 하였다.” 라고 하였다. 진평왕은 수많은 장인들을 보내어 절을 짓는 일을 돕게 하였는데, 지금도 그 절이 남아 있다.

이능화 선생은 조선여속고에서 마는 우리말의 마()이다. 그러므로 마동이 바뀌어 말통이 되고 말통이 다시 바뀌어 영통으로 되었다.  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을 서동이라 하였으니 말통은 곧 서동(맛동)이 바뀌어 된 말이다. 서동은 신라의 선화공주를 취하여 백제로 돌아가 왕위에 오른 다음, 왕비 선화부인과 더불어 익산에 행차하여 미륵사를 창건하고 세 미륵사를 짓게 하매,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어 도운 것이라 생각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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