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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서용석 박사의 웨딩(Wedding) 이야기-88 역사상의 유명한 결혼(3)

김문희가 꿈을 사서 김춘추에게 시집간 일

 

김유신 장군

 

무열왕 김춘추

 

문명황후(김문희)

     

태종(太宗, 602- 661년 음력 6)은 신라(新羅)의 제29대 임금(재위: 654~661)이다. 무열대왕(武烈大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은 김()이고, 휘는 춘추(春秋)이다. 진골(眞骨) 출신으로 이찬(伊飡)에 이르기도 했던 김용춘(金龍春)과 진평왕의 차녀 천명공주(天明公主)의 아들이다.

     

선덕(善德진덕(眞德) 두 조정에 걸쳐 국정 전반, 특히 외교 문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특히 진덕여왕 때는 이찬(伊飡)에 이르게 되고 진덕여왕 사후 대리청정으로써 국인의 추대를 받은 알천의 사양으로 진골 출신 최초의 신라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며, 그렇게 신라 중대왕실(中代王室)의 첫 왕이 된 김춘추는 아들 문왕(文王), 지경(智鏡)과 개원(愷元)을 각각 이찬(伊湌)으로 관등을 올려줌으로써 신라의 왕권을 강화시켰다. 이후 660년 백제를 정복하였고, 삼한일통을 이루었다.

661년 재위한지 8년에 승하하셨고, 나이는 59세였다.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를 지냈다. 시호는 무열(武烈)이며, 한반도 최초로 묘호를 사용하였다. 묘호(廟號)는 태종(太宗)이다.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에 대해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김유신의 누이동생인 보희가 어느 날 서악(西岳)에 올라가 소변을 보았는데 서라벌 전역이 소변에 모두 잠겨버렸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그 일이 있고 열흘 뒤인 정월 오기일에 김춘추는 김유신과 함께 김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을 하게 되었고, 여기서 김유신은 일부러 김춘추의 옷깃을 밟아 끊은 뒤 자신의 집에서 옷을 수선할 것을 권하며 집안으로 들이고, 자신의 누이동생을 불러 옷을 꿰매게 했다. 보희는 "사소한 일로 귀한 분을 대할 수는 없다"며 사양했고, 문희가 대신 나서서 옷을 꿰매 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져서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는데, 좀처럼 김춘추가 문희와 정식으로 혼인하려 하지 않자 김유신은 "남편도 없는 것이 부모도 모르게 임신을 하였다"며 곧 문희를 자신이 불태워 죽일 것이라고 소문을 냈고,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남산(南山)에 오르는 날을 기다려서 뜰에 땔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웠다. 산 위에서 그 연기를 발견한 여왕이 "저것은 무슨 연기인가?" 하고 묻자 옆에서 "아마도 유신이 제 누이를 불태우려는 모양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까닭을 묻는 여왕에게 "남편도 없이 임신하였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왕이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고 묻는 옆에서, 마침 여왕을 따라 나왔다가 안색이 질린 김춘추를 발견한 여왕은 "너의 짓이구나. 당장 가서 구하라." 하였다. 이후 김춘추는 문희와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김유신의 주도와 김춘추의 동조로 이루어진 정략적인 측면이 강했던 이 혼인을 통해, 왕위 계승에서 배제된 진지왕계와 옛 금관가야계 귀족간에 정치·군사적 결합이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지왕계(김용춘·김춘추)는 김유신계의 군사적 능력을, 금관가야계(김서현·김유신)는 진지왕계의 정치적 위치를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었고, 이러한 상호 이익에 입각해 이루어진 정치적 결탁은 신라의 중고(中古) 왕실의 진골 귀족 내에서 하나의 신집단을 형성하게 되어 성골(聖骨)계로 대표되는 기존의 구 귀족집단의 견제와 반발을 받았다. 무열왕은 부계가 진지왕의 자손이고 모계가 진평왕의 자손으로 양쪽 모두가 왕족인 성골에 속했지만, 무열왕 이후 부계만이 왕족인 진골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고 그를 상징적인 진골 최초의 임금으로 평가한다.

이능화 선생은 조선여속고에서 꿈으로 길흉을 점치는 일은 동아의 고풍이다. 지나(중국)의 주서(周書)를 상고하건대, 태사(주의 문왕 비)가 꿈에 상의 뜰에 난 가시나무를 본 일과 꿈에 태자 발이 주 조정의 가래나무를 대궐에 옮겨 심으니 잣나무가 된 일을 문 왕께 고하니, 문 왕이 드디어 태자 발을 불러 명당자리를 잡아 길몽에 절하게 하고 나서 상의 큰 꿈을 황천상제로부터 받았다고 했다. 우리나라 설화에도 신라 김문희가 언니의 꿈을 사서 귀인의 아내가 되었다고 하니, 이 전설은 다 계통이 있다.  고려 정화왕후 진의가 언니의 꿈을 사서 당 귀객의 아내가 되었다고 전하여 진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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