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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한국불교포교어떻게 할것인가-4 보살의 허실(LA 김안수 포교사)

대승불교: 보살의 허실(의탁에만 겉돌지 말고)에서 한걸음 나서는 전법도생 수행불교로 흔히들 하는 말로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요 대승보살이라고 말하는데, 과연 이 같은 구호에 맞는 대승불교를 구현하고 있는가. 냉정하게 말해서, 말과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상구보리-하화중생, 대승의 대의를 가리키는 표적이다. 결국은 전법도생을 위한 상구보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불교가 대승을 표방하면서도 전법도생(하화중생)을 외면한 상구보리에만 집착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소승적 수행으로 몰락되어버린 명칭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는 상구보리에 열중하는 수행자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대승이 왜 표방되었는가. 부파불교가 문제되어 그릇된 수행집단을 바로잡아 보자는 것이지, 상좌부 불교의 청정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분명코 상구보리의 목적지는 청정에 있음이 전제되고 있는데, 이를 망각하고 하화중생을 빌미로 퇴색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출가승가의 물줄기는 항상 맑아있어야만 세간을 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상좌부계통의 남방불교가 마치 상구보리에만 열중하는 듯 보이지만, 오직 수행집단이 청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세간의 등불로서 승가의 본분을 다하며 존속하고 있지 않는가. 대승불교를 지향하고 대승보살행을 실천하겠다는 의지와 서원에 대해서는 토를 달 필요가 없다. 사홍서원이 보살의 실천행이다. 중생무변서원도(고성제), 번뇌무진서원단(집성제), 법문무량서원학(멸성제), 불도무상서원성(도성제) 이를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목표로 하면서 일관되게 수행과 포교를 병행해야만 마땅하지 않는가. 하지만 한국불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한국불교가 과연 대승불교인가. 그리고 대승출가승가로서의 청정을 올곧게 유지하고 있다고 보이는가. 한국불교는 대승보살행을 실천, 구현하는 현대에 알맞은 보살불교로서 과연 거듭나려고 승가와 재가가 다함께 노력을 경주하고는 있는 것일까. 포교와 관련하여 교육적인 관점에서 대승불교를 해체해 보자. 적어도 한국불교가 대승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조건이 근본불교를 배우고난다음 대승불교의 교학을 철저히 공부한 후에, 작금에 적용할 수 있게끔 역대(원효, 대안, 균여, 서산, 사명, 만해)의 선지식들이 해온 것처럼-보살로서의 실천적 현실참여를 해야 하는데, 지금 한국불교의 현주소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대승불교는 인도에서 용수의 중관파(中觀派)와 세친의 유가행(唯識學派)의 학설을 모태로 한다. 포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교과과정을 마스터해야 하고 또한 대승교학 이전에 상좌부의 삼장도 공부를 해야 연계된다고 본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포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불교교학=철학을 철저히 연찬한 다음에 포교사로서 설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교육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더구나 대승불교를 표방하는 포교사가 대승적 대의를 망각한 채, 교리적 무장도 없이 나선다는 것은 어딘지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불법을 전하겠다는 의지만 가지는 대승불교의 허실(구호에만 그치는 수행)을 낳는 꼴이 되지 말자는 뜻에서 다시금 이를 깊이 인식하자는 차원에서 각성해 보자는 의미에서다. 대승불교의 경전은 법신 보신 화신을 등장시킨다. 이는 왜일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본은 청정에 있으며, 원만은 현실이 불국토로 장엄됨을 말하며, 천백억화신은 승가의 바림직한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법승 삼보에 대한 개념정리가 대승에서는 새로운 귀의처로서 오직 청정법신, 원만보신, 천백억화신으로 해석되어 거듭나야 할 것으로 생각해 본다. 왜냐. 그것은 대승을 실현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청정에 귀의할 것이며, 둘째는 현실 불국토를 이루기 위한 가르침이어야 하며, 셋째는 석가모니부처님처럼 고해 중생을 위해 사바 현장에 직접 나투시는 모습을 닮아가기 위한 진정한 승가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곳에 귀의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절에서는 여자 신자를 ‘보살’이라고 부른다. 큰 범주에서 보면 그렇게 빗나간 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보살의 뜻은 그 이상의 뜻이 있다. 대승불교의 사상을 실천, 구현하는 자는 모두가 바로 보살이다. 이는 학계가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을 확대해석하여 출가든 재가든 보살승니(僧尼)로 간주하여 적용한 데서 온 예가 된 것이리라. 물론 보살승(菩薩乘)이란 용어는 보살불교의 철학적 교리적 체계화에 의한 상좌부의 아라한에 맞대응 되는 불교를 뜻하는 엄청난 함의가 숨어있다. 보살행은 대승불교를 실천하는 행위인데, 정말 대승불교를 제대로 펴는 불교를 하고 있는 것인지 냉정하게 살펴보자.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걸핏하면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이며, 소승불교와는 다르다.’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한국불교가 소승적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대승적이지 못하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의 불교 현실을 직시해보자. 본국불교든 미주불교든 정말 넓디넓은 사회대중이 쌍수를 들어 환영해 맞이하지 않고 외면하는 꼴인 소승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승보살불교가 되기 위해서는 불교 자체에 대한 자정(自淨)과 혁신(革新)에 의한 제도개혁과 정신적 전환(轉換)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 한국불교는 어떤 전환점에 놓여 있다고 보는데, 사실이다. 뭔가 시대에 부응하는 불교를 창조하기 위해서 과도기적 현상에 처해 있는데, 잘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 불교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제대로 된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상좌부 교학을 어느 정도 마스터한 다음에 대승교학을 연찬하고 나아가서 선(禪) 수행까지 한 다음에 포교 일선에 나서야 보살로서의 전법포교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바람에서, 종단의 제도적인 장치에 의해서 교육이 이뤄지고 지원이 뒤 따라야 효과적인 전법포교가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제 월 김 안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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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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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5/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