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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한국불교포교어떻게 할것인가-5 갈수록 태산(LA 김안수 포교사)

갈수록 태산인 본국불교 상황 최근 본국 불교계 소식을 접하다보면, 정말 신심 떨어진 일들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부각하는 문제가 동국대 사태이다. 그런가하면 가야총림 방장을 선출하고서 무효라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고, 마곡사 주지 선거를 둘러싼 금품 수수로 법원에 제소되어 실형을 받을 직전에 놓여 있고, 그야말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포교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20-3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본국 불교계의 변화와 현주소다. 그렇지 않아도 불교신자가 줄어드는 판국에 이런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니 본국 불교계 전반이 흔들리는 현상을 빚고 있다. 사태의 전말을 들여다보면 종권(宗權)과 관련이 있다. 종단권력을 장악해서 맛을 보다보니, 학교권력까지 장악하려는 데에서 비롯된 종단 지도층의 판단 미스에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인 것 같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본분을 망각한 채, 종교권력을 사회 정치권력과 동일시(同一視)하는 어리석은 소치(小癡)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수행자로서의 평상심까지 잃어버리는 그런 종권장악이 어떻게 태동되었기에 이 모양이란 말인가. 한국불교는 왜 다른 나라 불교처럼 승가가 건전하게 발전되고 신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가이다. 참으로 답답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오늘날 조계종단이란 어떻게 해서 존치된 것인가. 다른 군소종단을 제치고 한국국사에 간직된 사찰문화재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종단으로서, 주지하다시피 일제강점기를 벗어난 이후 본래의 한국불교 선본종찰(이판)의 정통 맥을 되찾고자, 비구승을 위한 불교정화(54년)가 시작되었고, 이로서 비구대처 마찰이 극심하던 차, 드디어 62년 그 마찰을 종식한 통합종단 형식의 현대판 조계종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 아닌가. 이 일련의 정화과정에서 사찰점거를 빌미로 출가본의를 상실한 악덕 가짜 승려들이 그간 너무나 많이 종단을 움켜쥐는 관행을 보고 자라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맴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불교내부의 새 정화개혁이 계속 태동하면서 그 몸부림의 물결은 끊임없이 흐르건만 어찌해서 소용돌이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회의 변천에 따라 경제지표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인플레의 악순환은 서민경제를 힘들게 하였듯이, 코삼비 비구들처럼 어찌해서 서로다툼의 종권을 놓지 못한단 말인가. 이래가지고서야 불교신자가 무슨 수로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암담하지 않는가. 왜 내가 한국불교에 민감한가? 미주에 있으면서, 어째서. 그야 이 원고를 제시하는 초고가 한국에서 잡아주고 다시 개칠하여 올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미주의 한국불교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미주에 접목되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간화선인가. 미국에서 간화선이 과연 각광을 받고나 있다는 말인가. 간화선을 표적하고 있는 한국의 조계종단이 이미 악화(사판)가 양화(이판)를 구축하듯 수좌정신은 설땅을 잃고, 송두리째 구축돼버린 실태가 아닌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가지고 한국불교를 미국인들이나 교포사회에 관심도를 촉발할 수 있단 말인가. 미주 이민일본불교가 왜 뿌리를 못 내렸던가. 승가의 참모습이 변질된 것을 미국인들이 너무나 소상히 경험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국불교에 혹시나 하고 미련을 가져보았다손 치더라도 이미 물 건너간 짝사랑으로 보이질 않겠는가. 한국불교의 위상을 무엇으로 보일 것인가. 외국에 소개되는 한국불교란 한국불교사속에 있는 사찰문화재 소개판 영어가 대부분이 아니던가. 템플스테이 수행체험 등 물론 외국인 수행자들이 모여서 수행하고 있는 처소까지 완연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한가. 이미 미국은 각국불교가 그들 교민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성장하여 작금에 이르렀고, 대체로 성공사례가 그들 본국불교와 연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나름의 정체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대만불교, 베트남불교, 태국불교, 스리랑카불교, 티벳불교 등이 미국사회에서 온전히 버팀을 보이는 것이 미국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그렇다고 보는가, 아니다. 그들의 교민불자가 본국과 연대된 활발한 교세확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어떻게 성장했던가. 미국의 선교세력이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성장세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미주 한국불교는 본국의 해바라기성에 의존될 수밖에 별도리가 없질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건너 불보기식으로 종단차원에서는 오랫동안 외면되었던 것이 아니던가. 지금은 온 세계가 온라인 상태의 영어권 불교로 돌입한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미국에서 한국불교가 고작 한문식 불교로만 그러면서 구태한 제식불교만 가지고 젊은 세대와는 아예 소통되지도 않는 교민포교에 대응하고 있으니 어떻게 적극적 포교를 펼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미국은 완연 다문화 다민족 사회다. 200만에 돌입한 한인 미주이민자 숫자에서 한인불자가 얼마나 될까. 모두가 미국인으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 변신했단 말인가. 아니다. 한국의 정서에 있으면서- 미국식으로 살뿐인 것을. 그러면 한국불교의 토양은 미국에서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 것일까. 본국의 한국불교가 제대로 서고 그 여력의 힘을 미국의 교포사회를 위해 무엇인가를 다각도로 전개해 주지 않는 한, 미주 내에서 홀로 자생적인 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미주내 한국불교의 현 실태를 방관한 채 지켜만 볼 뿐이지, 미래지향적 발전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한국불교 1천 7백년사에서 불교의 권위가 조선시대 말고 이렇게 땅에 떨어진 적이 있는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제발 본국 불교 지도층은 대오각성해서 본분으로 돌아가서, 불법이 세세생생 잘 돌아가도록 원을 세워 정진해줬으면 한다. 내가 왜 인터넷을 통한 한국불교의 개혁세력을 바라보는가. 이들만이 미주 한국불교를 새롭게 거듭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의 메아리-가 인터넷을 통한 전 세계 불자들과 함께 할 동지규합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 월 김 안 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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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