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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실크로드기행⑰실크로드의 사막과 낙타 - 사막서 말보다 진가를 발휘한 낙타/ 매일종교신문 이치란 박사






















▲ 중국 감숙성 둔황 명사산 월아천에서 필자 이치란 박사.     © 매일종교신문


실크로드는 초원로와 사막의 오아시스로 등으로 형성되어 있다. 실크로드 선상에서 초원과 말, 사막과 낙타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중국 서안에서 서역을 가기 위해서는 하서회랑을 지나야 하고, 필히 둔황에 이르게 되는데, 실크로드의 상인들이나 구법승들은 여기서 한 숨 돌리고 다시 길을 나섰던 것이다. 둔황에 들어서면 서역의 기분을 약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이 지역이 사막지대이기 때문이다. 둔황은 고비사막의 서쪽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둔황은 오아시스 타운이다. 몽골의 고비사막은 넓은 지역에 걸쳐 있고, 둔황은 고비사막의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몽골인들은 이 지역도 고비사막의 일부로 생각한다. 고비 사막은 몽골과 중국에 걸쳐 있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막이다. ‘고비’는 몽골어로 ‘거친 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북쪽은 알타이 산맥과 스텝(초원) 지대, 남쪽은 티베트 고원, 동쪽은 화베이 평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둔황에서 월아천(月牙泉)이 있는 명사산만 가도 사막 기분이 난다. 막고굴(모가오쿠)도 사막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둔황은 더더욱 서역의 관문이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된다.
 













▲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 가장자리에 비단길이 있다.     ©매일종교신문


둔황에서 양관이나 옥문관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사막지대에 접어들게 되는데, 양관(陽關)은 둔황에서 남쪽으로 75km 떨어진 관문으로 북쪽의 옥문관과 함께 둔황 이관(二關)으로 불렸다. 한 무제 때에 세워진 방어 요새로 옥문관을 지나면 실크로드 북도(北道)로, 양관을 지나면 남도(南道)로 통하였다. 타림분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클라마칸 사막은 실크로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막의 가장자리에 비단길이 나아 있다. 실크로드선상에서 타클라마칸 사막(塔克拉玛干沙漠)은 간선로이며 중심지였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현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있다. 남쪽으로는 쿤룬 산맥(곤륜산), 남서쪽으로는 파미르 고원(총령), 서쪽과 북쪽으로는 톈산 산맥(천산)에 의해 둘러 싸여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은 사막 중에서 15번째의 크기이다. 면적은 27만km²(남한면적10만km²)에 달하며 길이는 1,000km, 폭은 400km이다. 근래에는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건설, 남쪽의 허톈과 북쪽의 룬타이를 연결하였다. 중국이 새로운 철길과 고속도로를 내고, 새 역사를 쓰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과 타림 분지의 북부에는 톈산 산맥이 있어 이 두 지역의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에는 비단길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던 둔황이 있다. 남쪽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쪽 경계를 이루는 쿤룬 산맥이 있으며, 쿤룬 산맥의 남쪽에 티베트 고원·카라코람 산맥·히말라야 산맥이 차례로 이어진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서쪽에는 파미르 고원과 힌두쿠시 산맥이 있으며, 이들 지명들 중 카라코람 산맥과 힌두쿠시 산맥은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이다.
 













▲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     © 매일종교신문


타클라마칸 사막은 모래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강도 있으며 오아시스 타운이 있어서 실크로드를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말이나 낙타와 함께 쉬어 가면서 무역을 했다. 오아시스에는 산맥에 내린 비가 흘러들어서 물이 공급된다. 실크로드 북도는 둔황의 옥문관에서 루란 투루판 쿠처에 이르고, 양관을 지나서는 곤륜산 북단 아래를 끼고 호탄 야르칸드 카스(카슈가르)에 이른다. 타클라마칸 사막에는 이밖에도 다소 크고 작은 오아시스 타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사막에 묻혀버린 타운도 있어서, 초기에는 지금의 이란인이나 그리스인들도 이 지역에 거주했던 것으로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는 한때 불교가 주류종교로서 활동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원전과 당 왕조시대에는 중국인들이 타클라마칸의 오아시스와 비단길을 군사적으로나 무역을 위해서 그들의 지배권아래 두었다. 중국 지배 시대는 튀르크와 몽골 및 티베트 인들에 의한 지배가 혼재하였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주로 튀르크인과 위구르인이 이 지역의 지배자로 부상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면 파미르고원과 힌두쿠시산맥이 나온다. 계속해서 서진하면 키질쿰 사막과 만나게 되는데, 이 사막은 중앙아시아의 사막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그리고 일부는 투르크메니스탄에 걸쳐있다. 면적은 29만km²이다. ‘키질쿰’은 우즈베크어와 카자흐어 모두 ‘붉은 모래’를 뜻한다. 이 사막을 지나면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 사막에 이르고, 이란고원 남쪽에는 루트사막이 있다. 이란 중부지역에는 카비르사막이 펼쳐지는데, 길이 800km, 너비 320km, 면적 8만km²이다. 남동쪽으로 루트 사막과 접하게 된다. 인도 북서부에서 파키스탄의 남서부에 걸쳐 펼쳐지는 타르사막이 있는데, 흔히 인도사막이라고 부른다. 남부는 몬순의 조건이 좋을 때는 온통 초원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란을 지나면 아라비아 사막에 이르게 되는데, 아라비아 반도 북부 내륙의 사막이 네푸드 사막으로 동서로 약 290km, 남북으로 약 230km 펼쳐져 있다. 이 사막은 룹알할리 사막 및 다하나 사막에 이어진다.
 













▲ 이슬람이 중동,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주류종교로 퍼져 나가게 한 아라비아사막(노란선 안).     © 매일종교신문


아라비아 반도 남부에 있는 룹알할리 사막은 광대하다. 이 사막의 규모는 사하라 사막 다음 가는 거대한 사막이다. 예멘 오만 아랍에미리트의 일부를 포함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남동부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아라비아 사막은 예멘에서 오만과 페르시아 만을 경유, 요르단과 이라크에 걸쳐있는 큰 사막이다. 시리아 사막은 아라비아 반도 북부의 사막과 스텝이 섞인 지역으로,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에 걸쳐 있다. 동쪽은 오론테스 강, 서쪽은 유프라테스 강과 접한다. 팔미라나 다마스쿠스 등의 도시가 오아시스를 끼고 발달해 있다.
 
전회에서 이미 말에 대한 이야기는 소개했으므로, 이번 회에서는 낙타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 해보자.
 













▲ 관광객들이 사막에서 낙타를 타면서 사막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낙타(駱駝)는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사막 지대에 사는 포유동물로서, 사막생활에 매우 잘 적응되어 있는 동물로서 인간에게도 교통과 화물 운반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실크로드 시대에는 이들 지역에서 온 상인들이 타림분지와 중앙아시아의 사막지대에 낙타를 남겨두고 가서, 낙타가 교통과 화물운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낙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동물이었다.
 
낙타가 사막에서 유용하게 이용된 것은 낙타가 땅에 발을 대면 방석 같은 판이 넓게 펴져 마치 사람이 눈신발을 신고 눈 위를 걷듯이 모래땅을 잘 걸을 수 있어서이다. 낙타는 뿔이 없으며 눈썹은 길고 두 줄로 되어 있어서 모래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해 준다. 낙타는 수일 간 먹지 않고 일할 수 있는데, 이때 혹은 점점 작아져 나중에는 거의 없어지는데, 여기에 저장된 수분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낙타는 물 없이도 며칠 심지어는 몇 달까지 살 수 있다.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사는 사람들은 낙타에게 갖가지 열매와 풀을 먹인다. 사막에서 여행 도중에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눈에 띄는 대로 먹이를 먹여 두는 것이 생존전략이다. 낙타는 몸 속의 수분이 보존되도록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다. 대신 체온이 낮에는 6℃ 정도 올라가고 밤에는 내려간다.
 













▲ 사막지대에서 생산된 복숭아와 석류.     © 매일종교신문


낙타는 사막지역에서는 운송 수단, 양식, 옷, 주거 재료 등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고, 농경지에서는 낙타를 밭갈이와 물레방아를 돌리는 데 이용하고 있다. 낙타털로는 옷감이나 천막을 만들고, 가죽으로는 신발, 가방 등을 만들며, 뼈는 상아처럼 세공하여 값진 물품을 만든다. 낙타나 말이나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인간에게 아주 유용한 동물이다.
 













▲ 가축화된 단봉낙타.     © 매일종교신문


야생단봉낙타는 전멸, 가축화되었으나 일부 쌍봉낙타는 지금도 야생에서 발견되고 있다. 필자가 타클라마칸 사막을 횡단하면서 쌍봉낙타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었다. 쌍봉낙타는 길들여져서 관광지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돈벌이에 이용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막지대에서 쌍봉낙타는 인기 있는 동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반면 단봉낙타는 밭갈이나 물레방아 돌리는 노역에 이용된다.

쌍봉낙타는 박트리아낙타로 알려져 있는데, 쌍봉은 두 개의 혹이 등에 나 있다. 혹 속에는 수분을 저장하고 있어서 먼 사막 길을 걷거나 열사의 사막지대에서 물이 없어도 몇 달간도 견딜 수 있는 물 저장고 역할을 하고 있다. 쌍봉낙타는 대부분이 가축화되었으며 전 세계에 약 2백만 마리 정도가 있다고 한다.
 













▲ 돈벌이에 이용되는 쌍봉낙타.     © 매일종교신문


낙타는 군사용으로도 일찍이 사용되었는데, 기원전 12세기 무렵부터이다. 특히 박트리아에서 낙타를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하였는데, 이것은 낙타의 안장이 큰 조건이 되었다. 기원전 5세기에서 1세기 사이에 군사적으로 활용되었고, 아라비아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인도국경낙타수비대가 국경일행사에서 행진하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역사상 낙타부대가 전투에 참가한 것은 기원전 853년 카르카르 전쟁 때 부터이다. 이 전쟁은 카르카르에서 아시리아와 다마스커스를 비롯한 이스라엘 등 11개 왕국의 연합군과의 싸움이었다. 이때부터 말이나 노새가 운반하던 화물을 낙타가 대신하는 것이 사막전에서 편리함을 알게 되었다. 동로마제국에서도 낙타부대를 보조로 활용했는데, 사막지대에서는 말보다 유리했는데, 특히 말이 낙타의 냄새를 싫어해서 접근을 피했기 때문이다.
 













▲ 이집트에 있었던 대영제국의 낙타여단.     © 매일종교신문


중세이후에는 오스만 제국(1299~1923)이 낙타를 이용한 교통, 때로는 전쟁용으로 적절하게 활용했는데, 낙타부대는 창 활로 무장했고, 근대에는 소총으로 전환하여 세계1차 대전에도 투입되었다.
 
최근에는 유엔평화유지군의 목적으로 낙타부대가 편성되어 있는데, 동아프리카의 화약고로 알려진 에리트레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수에즈 운하 개통과 함께 분쟁의 중심으로 휘말리게 된다.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기도 하고 에티오피아에 재 병합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에티오피아로부터 다시 독립하였다.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겪으면서 양측 다 10만 명이상의 희생자를 내기도했다.
 













▲ 1912년 발칸전쟁 때, 불가리아 군의 낙타수송부대.     © 매일종교신문


에리트레아는 종교문제가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는데, 오리엔트 정교, 이슬람교, 원시 종교, 개신교, 천주교 등이 혼재한 다종교 사회이기도 해서 종교 간의 갈등이 격화되어 있어서 사회가 불안한 상황이다.
 













▲ 에리트레아의 유엔평화유지군이 낙타를 타고 순시하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사막지대에서 낙타는 말보다 더 이용에 편리했던 조건을 갖고 있어서 선호되었는데, 속도는 말에 비해서 훨씬 뒤졌다. 장거리 달리기에서도 말은 낙타보다 더 멀리 갈 수 있었고, 말은 초원과 사막에서도 동시에 사용되었지만, 낙타는 사막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실크로드 선상에서 초원지대에서는 말이 단연 선호되었지만, 사막이나 반사막지대에서는 낙타는 특히 교통과 운송용으로 각광을 받은 것이다. 인도의 반 사막지대에서는 낙타가 지금도 교통과 화물운반용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 인도 비하르 주에서 낙타타기를 즐기고 있다.     © 매일종교신문


하지만 21세기인 현재, 타클라마칸 사막지대에서는 낙타보다도 기계화된 운송수단을 더 선호하고 있다. 사막지대에서 낙타를 키운다는 것은 번거롭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 기계화된 운송수단이 없어서 낙타는 단연 제1의 교통 운반 수단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 타클라마칸 사막의 곤륜산 쪽 허텐(화전)의 사막에서 조그마한 마을들로 이동해주기 위해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오토바이들.     © 매일종교신문


필자가 실크로드를 탐방하면서 가장 인상에 깊이 남는 지역은 단연 타클라마칸 사막이었다. 불교적으로는 둔황이었지만, 실크로드의 진 맛은 타림분지에 있었다. 또한 파미르고원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타림분지의 허텐이나 카슈가르에는 아직도 실크로드 시대의 정취가 남아 있었고, 파미르고원의 타쉬쿠르칸도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인 카자흐스탄이나 키리키스스탄의 비슈케크 우주베키스탄의 타쉬켄트 등지는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실크로드의 정취보다는 구 소련풍의 현대화된 모습들이었다. 다만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등지는 중세시대 이슬람의 문화와 유적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었다. 21세기 실크로드는 급변하고 있다. 특히 중국령 실크로드 지역은 옛 도시들의 모습이 지워지고, 중국식 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중국정부에서는 ‘일대일로’라는 신 실크로드의 프로젝트에 따라서 사막지대에도 고속도로를 내고, 철로를 깔아서 변화시키고 있었다.
 
서안에서 타림분지를 지나고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아라비아사막을 지나서 이스탄불(동로마) 그리스 로마(서로마)까지 연결되는 길이 실크로드이지만, 타림분지는 아직도 중세시대의 실크로드 정취가 살아 있는 곳이다. 필자는 그동안 서안을 출발, 하서화랑을 지나서 둔황에 머물고, 타림분지의 곳곳과 천산산맥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 등지를 위주로 해서 실크로드기행을 엮어 왔는데, 이 지역과 관련 내용을 몇 차례만 더 리서치하고 무대를 페르시아와 동로마 등지로 옮겨서 기술하고자 한다.(계속) 
(이치란 해동 세계 불교 선림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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