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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실크로드기행⑧위구르족의 고향 카슈가르 - 단명의 이슬람공화국 그리워하는 2천년 역사의 국제오아시스 타운/매일종교신문 보검 이치란 박사



















▲ 위구르족의 정신적 고향 카슈가르에서 필자 이치란 박사.     © 매일종교신문

 
단명의 이슬람공화국 그리워하는 2천년 역사의 국제오아시스 타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우루무치가 신장성의 성도라면, 카슈가르는 위구르 족들의 정신적 고향이자 불발에 그친 이슬람 공화국 수도였다. 1933년 잠깐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건국되었지만,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위구르족들은 지금도 이 단명의 이슬람공화국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면서 향수에 젖는다. 카슈가르는 중국인들에게는 카스(喀什)라고 불린다. 신장성을 비롯해서 내몽골 티베트 등지를 가면 두 개의 지명이 공존한다. 민족 고유의 토착이름과 중국의 한자식 이름이다. 카슈가르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정부나 중국인들은 카스로, 위구르족들은 카슈가르라고 부른다. 우리 같은 이방인들은 눈치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때로는 엉뚱한 곳으로 아니면 버스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 카슈가르의 최대 국제시장, 인근 중앙아시아와 파키스탄의 나라들에서 까지 이곳에 와서 물건을 사고판다     © 이치란


카슈가르는 실크로드 시대에 타림분지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로에서 가장 각광을 받던 도시였다. 카슈가르는 실크로드선상에서 2천년의 장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일종의 국제오아시스 타운이다. 지금도 카슈가르에서 타지키스탄과 키리기스스탄으로 가는 국제버스가 연결되고 있다. 필자도 이 국제버스를 타고 키리기스스탄의 한혈마의 고향, 페르가나 직전의 오쉬로 간적이 있고,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타지키스탄 국경까지 가서 석두성이 있던 오아시스에서 머무른 바 있다.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카슈가르에 집중해 보겠다.
 
카슈가르는 실크로드에서 중국과 중동 그리고 유럽과의 사이에 무역집배(集配) 거점타운이었고, 군사적으로도 전략요충지였다. 또한 카슈가르는 지금 중국 파키스탄 경제회랑의 일부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고대시대부터 카슈가르는 제국과 왕국들의 다양한 문화의 접합지점이었다. 카슈가르는 역사적으로 중국 투르크 몽골과 티베트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므로 카슈가르는 역사상 유목 초원국가들의 다양한 민족과 집단의 수없는 전쟁으로 점철된 도시였다. 카슈가르에 대한 역사는 무궁무진 그 자체이다. 실크로드선상에서 카슈가르 역사는 바로 실크로드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카슈가르는 타림분지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교통의 교차지점이었다. 동쪽에 둔황이 있다면 천산남로 오아시스로의 마지막 종점이 바로 카슈가르였다. 21세기 현 시점에서 둔황은 역사의 유적으로서 관광지이고, 해외에서 ‘둔황학’이란 이름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카슈가르는 아직도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나마 간직하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 필자가 머무르는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중동의 페르시아와 터키 이슬람 풍의 시가지.     © 매일종교신문


카슈가르는 신장성의 가장 서쪽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파키스탄이나 타지기스탄으로 가려면 카슈가르를 들려야하고, 키리기스스탄의 오쉬로 가기 위해선 카슈가르를 지나가야 한다. 우루무치는 지금 중국식 도시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지만, 그래도 카슈가르는 중세적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데, 머지않아서 변화가 오리라고 확신한다. 실크로드 오아시스의 중세적 모습을 보려면 빨리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변화된 카스시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옛날 시가지에 있던 버스 터미널이 시 외곽으로 이전해서 크게 건설한 것을 1년 사이에 목격했기 때문이다. 파미르 고원을 가는 길도 그 옛날 천축 구법승들이 말을 타고 아니면 도보로 내(川)를 건너고 산등성이 고개를 넘었던 옛길에서 이제는 수 십 미터 높이의 교각을 세워서 고속도로를 건설 중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카슈가르란 이름을 줄여서 ‘카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Ptolemy 90-168CE)는 그의《지리학》책에 카시(Kasi)라고 표기한 것을 보면 고대 시대에도 카슈가르나 카시를 병용해서 사용한 듯하다. 이란 동부의 말로 카슈가르는 ‘바위산’이란 뜻을 갖고 있다. 사실, 이 지역은 사막의 끝자락이면서 동시에 바위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중국 사서에는 소륵(疏勒)이라고 불렀으며, 티베트는 ‘수리그’라고 불렀다.
 
한나라 때는 천산북로를 따라서 천산산맥을 넘어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중국의 사서는 전한(西漢) 시기인 기원전 76년 한나라는 흉노 우전(호탄) 소륵(카슈가르)과 조그마한 집단을 정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카슈가르에서 천산산맥을 따라서 북동진하면 옛날 어커쑤(아극소)에 이른다. 필자는 하루 시간을 내서 당일치기로 한나라 때 고묵이라고 불렀고 쿠처(구자국)에 속했던 아극소를 다녀오기도 했다     © 이치란


카슈가르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기 전에는 이란의 조로아스터교와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를 믿고 있었다. 한나라 때는 카슈가르가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후한서》에 따르면 기원후 25-170년 사이에 2만 1000세대로서 병사는 3천명이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흉노에 밀려서 중앙아시아의 박트리아로 밀려났던 월지가 쿠샨제국을 세워서, 이 지역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사서의 기록이다. 카슈가르는 수나라 때도 영향을 미쳤지만, 중국이 가장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당나라 때라고 할 수 있다.
 
현장 삼장은 644년 인도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길에 파미르 고원의 오아시스 읍성(邑城) 타지키스탄 자치주인 타쉬쿠르간(Tashkurgan 塔什库尔干镇)의 석두성(石頭城)을 넘어서 카슈가르에 들렸다. 현장법사는 카슈가르 사람들은 애기를 낳으면 머리를 납작하게 하고, 성인들은 몸에 문신(文身)을 새기고 눈은 푸른색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곡물이 풍성하고 과일과 꽃이 만발하고 순모로 만든 카펫 또한 유명했다고 말한다. 문자는 인도문자를 개작한 것이고, 언어는 이웃 나라들과 달랐다고 했다. 주민들은 신심 깊은 불교도들이고 수백 개의 사원과 수만 명의 불자들로 붐볐다고 들려준다. 모든 사찰은 스라와스티와다(說一切有部) 부파에 속했다고 한다. 한편, 이 무렵 중앙아시아의 헤라트와 사마르칸트에 설치됐던 네스토리우수의 교파의 경교(景敎)의 감독회(주교직)는 카슈가르를 거쳐서 중국에 전파되었다.
 
이 무렵 중앙아시아의 서쪽에서는 서돌궐이 발흥하고 있었다. 몽골초원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돌궐은 수나라의 이간책으로 583년경 서돌궐이 독립하게 되는데, 서돌궐은 실크로드를 통치하면서 여러 부족을 복속하고 파사(波斯, 페르시아)와 연합하여 에프탈(훈족)을 공략하고, 이후 또 비잔틴과 결맹하여,페르시아를 공격하는 등,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들어서자, 서돌궐은 당에 복속하는 듯 하다가 태종이 죽고 나자 서돌궐은 독립을 했으나, 당나라 3대 고종은 토벌군을 파견, 657년 서돌궐을 멸망시켰다. 
 













▲ 서돌궐의 최전성기 판도.     © 매일종교신문


서돌궐은 짧은 기간이지만 중앙아시아의 서쪽에서 세력을 떨치면서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나라들에 까지 영향권을 확대하자, 중국은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하지만 티베트가 카슈가르를 점령하자 카슈가르는 한동안 티베트의 영향권에 놓이기도 하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카슈가르 일대는 혼란에 빠졌지만, 739년경에 이르러서야 당나라는 카슈가르에 수비대를 설치함으로써 상당기간 당나라의 영향권에 들게 되었다. 하지만, 안사의 난이 일어나서 당 왕조를 또다시 혼란에 빠뜨렸다.
 













▲ AD700년경의 당나라의 판도.     © 매일종교신문


안사의 난은 755년 당나라의 절도사인 안녹산(安祿山 703-757)과 그 부하인 사사명에 의해 일어난 대규모 반란으로 당나라는 힘이 점점 약해져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무렵 중앙아시아에서는 탈라스 전투(751년 7-8월)가 발발하는데,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高仙芝?-755년)가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동맹군들사이에 카자흐스탄 영토인 탈라스 강 유역에서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싸운 전투였는데, 결과론적으로는 고선지를 비롯한 지휘관 및 소수의 병사만이 탈출했다.
 
아바스왕조는 이 전투의 승리로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세력의 기반을 굳히게 되었고,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이슬람교가 퍼지기 시작했다. 711년 아랍은 카슈가르를 침략했으나, 카슈가르와 투르키스탄은 아랍을 물리쳤지만, 이슬람종교는 지속되어서 싹이 트다가 10세기경,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카라한 왕조(840-1212)에 의해서 이슬람이 정착되었다. 한동안 카라한 왕조의 영향권 아래 있다가 잠깐 서요의 지배를 받는가 했는데, 1219년 몽골제국에 의해서 카슈가르는 몽골제국의 차가타이 칸 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무렵《동방견문록》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1273-4년 이곳 카슈가르를 방문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카슈가르에는 경교의 교회가 몇 개 된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동 차가타이 칸 국 투글루크 티무르(Tughlugh Timur, 1329-1363 티무르제국 창시자 아미르 티무르와 다름)가 이슬람을 국교수준으로 확정지어서, 이후 이 지역은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 타타르의 의상을 입고 있는 마르코 폴로.     © 매일종교신문

 
이후 카슈가르는 실크로도 타운으로서의 기능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청의 지배를 받으면서 크고 작은 반란이 계속 일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둥간혁명(1862-1877)까지 일어났는데, 둥간이란 당나라 때부터 원나라에 이르기 까지 중앙아시아나 인도양을 거쳐 건너 온 아랍계·페르시아계의 외래 무슬림과, 그들과 통혼하여 개종한 중국인들이다. 회족(후이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중국내의 최대의 무슬림 민족 집단이다.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중국에 사는 이슬람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언어는 중국어를 사용하지만, 종교관련 용어는 아랍어, 페르시아어, 투르크어에서 차용하여 쓴다. 성명은 한족과 큰 차이가 없지만, 예언자 무함마드의 이름에서 따온 ‘마(馬)’씨 성이 흔하다. 후이족은 한족 등과 어우러져 함께 살지만 이슬람 율법에 따른 생활을 하여 한족과는 식습관이나 관혼상제 등의 습속이 크게 다르며, 이 차이가 후이족이 별개 민족 집단으로 구분되는 근거가 되고 있다.
 













▲ 닝샤 후이족 자치구(宁夏回族自治区)의 한 회족 가족이 라마단을 끝내고 이드 알피트르를 축하하는 장면.     © 매일종교신문


둥간혁명은 중앙아시아 코칸트 칸국 출신인 야쿱 벡(1820-1877)이 신장을 거점으로 청나라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청군에게 패하여 그의 왕국은 와해되고 그 역시 죽음을 당했다.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카슈가르는 1933년 잠깐 1차 이슬람공화국을 세웠으나 곧 멸망하고 1944년에 2차 이슬람공화국을 또 세웠지만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신장성자치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슬람공화국을 세우는 데는 카슈가르와 위구르족들이 배경이 되고 있었다.(계속) (이치란 해동 세계 불교 선림원 원장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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