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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한국불교포교어떻게 할 것인가-10 지혜와 자비 김 안 수 포교사

지혜와 자비 자비는 어떻게 구현되는 것일까. 이에 자비를 구현할 방도를 찾는 것은 지혜일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지혜(깨달음)를 찾아 줄곧 닦아온 한국불교가 왜 이다지도 사회적 자비구현이 미흡할까. 자비실천을 저버린 지혜만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세속을 치유 못하는 공동체적 삶을 벗어난 나 홀로 사는 지혜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모든 학문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현실에 적용되어 응용되고 있음을 보면서, 그토록 수승하다는 반야지혜(일체 중생의 구제)를 닦아온 한국불교 승가의 모습이 오늘에 이르러 무력하게 세인의 빈축을 사는 형태로 전락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를 보면서 그간 한국불교 집단 수행불교의 탁마된 지혜가 사회를 위해 발현되지 못하는 것은 분명코 그 지혜수행(간화선)에 문제점이 있음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상구보리가 지혜를 찾는 것이라면 하화중생은 자비구현에 있음이기 때문이다. 작년 세월호 참사 사태에 대한 자비구현에 있어, 범종단적 차원에서 전불교도의 사회적 대응은 만족할 만치 흡족했다고 보는가. 어찌했어야 했을까. 많은 생각으로 범벅되어 있다. 이런 끔찍한 불행을 보면서도 불교적 가르침으로 명확하게 현대적 조명으로 근원적 문제와 그 해답을 만인이 납득할 만큼 제대로 짚어서 천명 제시하고, 불행을 만난 이들이나 가족들을 위한 적극적 자비실천의 움직임이 사회 공동체적 행동으로 집약된 범종단적 자비구현의 실천 표현을 세인들에게 감동을 주며 나서야 했던 적절한 자비집단 행동마저 스스로의 자정쇄신에 갇힌 현실에 쫓기는 종단의 무력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전체를 싸잡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폄하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마침 부처님오신날 합동행사를 안성맞춤격으로 적절히 애도의 행렬로 바꾼 것이나, 사고현장에 법당을 마련하고 이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스님들이나 재가자들의 모습을 어찌 대응이 없다고 하겠는가.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사고에 대한 조명을, 안전불감증을 종교적 차원에서 극명하게 한목소리로 들어내어 불교가 국가 정치권을 향해서 어리석은 구조적 관행(개인숙업이 아닌, 현실로 들어난 사회적 공업)을 척결하고자 하는 집단적 표명과 자비적 실천행위가 미약해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이제 와서 보면 작년 8월에 있었던 천주교 교황의 행사가 이를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불교포교문제는 현재 한국불교에게는 너무나 과중한 과제이다. 누차 하는 말이지만, 지난 20년 정도의 기간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다. 정화이후 큰 스님들께서는 앞을 내다보시고 도제양성, 역경, 포교를 종단발전계획 3대 지표(指標)로 삼았는데, 뭔가 선견지명이 있으셨다. 이분들은 다 도인들이셨다. 정말 스님 같은 분들이었다. 이제 다 열반하시고 안 계시지만, 수행을 제대로 하신 큰 스님들이셨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으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1990년대 이후 종단에는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불교 집안 같지 않다는 여론이다. 자비도 없고 마른 지혜만 넘쳐난다는 것이다. 꾀만 늘었다는 말이다. 도제양성인 교육, 경전번역인 역경과 전법포교가 꾀로 될 일인가 말이다. 다른 주제는 그만두고 우선 포교에 대해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원론적인 말로, 불법을 전파하는 것이 포교인데, 불법은 무엇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가르침을 제대로 배워서 전달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대로 배운다는 것은 수행이요 교육이다.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교육은 필수적이다. 수행과 교육은 지혜를 쌓는 일이다. 체계적으로 불교지식을 쌓고 고행 수행을 해서 뭔가 힘을 얻어서 지혜를 얻은 다음 포교일선에 나서는 것이 정상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일정기간 이런 교육 수행과정을 거친 다음에 나서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 현실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나마 자발적으로 포교하겠다고 사설불교대학 같은데 다니면서 열심히 나름대로 공부해서 포교사란 타이틀을 달고 나서는 분들이 있어 이는 가상하다고 본다. 하지만 종단에서도 일찍이 적극적으로 재가불자 지도자들에게 개방했어야 하는데, 사실, 재가불자 지도자들이 사회적 포교에 나서는 것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출가자수가 줄어들고 재가불자 지도자들이 증가하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재가불자들이 나섰는데, 시대적 요청이요 한국불교의 흐름이다. 내가 알기로 처음 사설불교대학을 설립해서 운영했던 분들을 보면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재가 불교 법사 포교사들을 양성했는데, 처음엔 곱지 않게 보다가 숫자가 많아지고 재가 법사 포교사들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종단에서 이런 흐름을 수용하고 사찰마다 이른바 불교대학 간판을 걸었는데, 지금은 불교대학이 넘쳐 나고 있다. 20년 전에 했어야 할 불사인데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일이다보니 종단 특단의 대안적 대책 없이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또한 불공시식도 항상 들어올 줄 알고 안일하게 생각하면서, 교세확장을 위한 새 신도들을 겨냥한 관리에는 소홀했고, 천도재나 인등 등 달기에만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수입이 있어야 사찰이 운영되고 현상 유지를 하기 위함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했던 수입원천도 이제는 먹혀들지 않고 고갈이 된 느낌이라고 전해온다. 그기에 아직은 포교사양성문제도 제자리를 잡지 못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같이 많은 과제가 도사리고 있어 포교를 논하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다고 본다. 설상가상으로 포교사양성을 했으면 어느 정도 포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활도 보장이 되어야 하는데, 스님들도 어려운 실정인데 재가포교사가 스스로 재가교단을 설립하는 것도 아니라면, 종단적 대응대책이 서질 못하고 있는데, 무슨 효과적인 전법포교활동을 능동적으로 이루어 내리라 보겠는가. 객관식 시험문제만 통과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고, 양적으로 많이 배출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라고 본다. 교육과 수행체계가 선 다음, 활동할 수 있는 현장에서 실무과정을 습득하며, 그리고 시험에 통과했다고 할지라도 신심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이들을 수용 배치하는 종단으로 고용할 수 있을 능력이 함께 갖출 때만이 제대로 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머리로 아는 마른 지혜는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불교지식을 쌓고 포교방법론을 익혔으면 참선도 해보고 깊은 설악산의 봉정암 같은 암자에 가서 기도도 해보는 체험을 해야 한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라서 체험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지혜를 얻어야 한다. 지혜만 있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자비가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불교계는 자비가 없다. 자비문중이란 말은 어디론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부처님은 승가에서 자비가 생명이라고 하셨다. 아무리 지혜가 뛰어나도 자비가 없으면 까칠해 보인다. 왜인가. 자비는 덕이기 때문이다. 본국불교나 미주불교나 지금 보면 자비는 실종되고 없고, 마른지혜의 꾀만 가득해서 분위기가 산만하고 어딘가 좌불안석의 불안한 기색들만 판을 친다. 나만의 인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교의 전반적인 풍토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다는 심정일 뿐이다. 본국불교계가 어지러운 것의 한 원인으로 다(多) 종파 현상을 거론한바 있는데, 이 다 종파 현상 또한 승가가 드라이하게 변하는데 일조를 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본국불교에서는 승가구성원들에 대한 자율적인 통제가 안 되고 있다고 전해온다. 전부가 도인이 되어 버렸다는 소식이다. 다 종파 시대가 되다보니 너도나도 종정이 되어 있어서 누가 정통이고 누가 비(非) 정통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교세가 약해지고 일반인들이 불교에 관심을 두지 않는 시대인데, 이런저런 상황들은 불교 전체로 보면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경험에 의하면 그래도 20-30년 전의 큰 스님들은 진짜 자비스런 대승보살들이었다. 근래에 들어 어쩐지 분위기가 살벌해져 있음을 감지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마른 지혜나 꾀보다는 덕 있는 자비가 더 요청된다. 특히 포교사에게는 자비란 덕목이 매우 중요하다. 제월 김 안 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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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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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