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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한국불교포교 어떻게 할 것인가-13 청소년 포교는 포교사들에게 맡기자 LA 김안수 포교사

청소년 포교는 포교사들에게 맡기자 그동안 포교문제를 터치하면서 내 나름대로 여러 각도에서 앵글을 잡아보지만, 포교대책에 대한 답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만큼 본국불교나 미주불교나 다 총체적 위기란 입장에서다. 물론 어린이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불심을 심는 사찰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수의 사찰에서만 불교유치원이나 법회를 하고 있다. 청소년 법회도 극히 제한 된 사찰에서 청소년 법회를 하고 있는데, 이런 사찰에 대해서는 눈물겹도록 고맙고 정말 박수를 쳐 주고 싶은 심정이다. 다른 사찰이 외면하는 일을 책임감을 갖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를 철저하게 신봉하는 불자라면 불법홍포를 위해서 발 벗고 나서는 것은 당연한 불자의 의무다. 어떤 한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고 교세를 넓힌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불교라는 종교가 인도 땅에서 뿌리내리기 까지는 엄청난 시련과 고통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부처님을 비롯해서 상수 제자들이 부처님 법을 펴기 위해서 어떤 수행생활을 하면서 승가를 이끌어왔던가. 그래도 부처님의 위대한 위신력(威信力)으로 바라문교가 압도적이고 그밖에 수많은 군소 사상가와 철학가들이 즐비한 상황을 뚫고 불법을 뿌리내리게 하는데 최선을 다했기에 오늘날 불교란 종교가 생존해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다행하게도 아소카 대왕 같은 불교도 왕을 만났기에 불교는 인도 동부 지역을 벗어나서 확장되었던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북인도에 불교가 전파되고 서역 중국에 전해져서 결국 한반도에 까지 불법이 수용되어서 우리는 불자라는 이름을 달고 살고 있다.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통과 난관이 있었겠는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토록 불법을 전파하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신 선조사(先祖師)님들의 공덕에 역대전승자들은 한없는 감사를 드리면서 전진의 당간으로 푯대를 삼고 세우며 앞길을 열어가야만 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서양의 기독교가 동양에 뿌리내리는데,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가 말이다. 목숨 걸고 선교를 한 결과로 한국은 기독교 국가처럼 되어 있음을 봐라. 한국불교는 그동안 훌륭한 고승대덕을 많이 배출했는데, 근래에 와서 이런 고승대덕들의 공덕의 은혜를 드높이지는 못할망정, 야금야금 까먹고만 있어 온 것은 아닌지, 총체적인 불교 내부가 너무 무사안일하게 대처해 왔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그동안 정치, 행정승려들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 것 같다. 안목이 부족했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종권(宗權)다툼이나 문중파벌 싸움 같은 것을 하다 보니 불교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본다. 수행하고 공부하는 풍토보다는 주지가 되고 중앙 종무기관에 근무하는 데에 맛을 들이는 것을 더 좋아하고 무슨 벼슬인양 과시하는 小 영웅주의적인 소아병적 권력지향 때문에, 수행이나 하고 공부나 하고 포교 전법하는 분들을 경시하는 풍토가 조성 된 것이다. 게다가 주지나 총무원장 종회의원을 선거로 뽑는 세속적 선거제도가 종단에 도입되면서 자비 문중으로서 산중의 전통 방식인 추대제도가 빛을 잃으면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 것이다. 민주적인 선거제도가 꼭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금권선거 파당선거 등 부작용이 세속보다 더한 종단으로 낙인된 것을 보면서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우리 불교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모습에서 우려를 보고 있는 재가불자들의 안타까운 심정이 분노로 치솟고 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불교는 사태를 바로 보고 바로 제 길을 가는 불교로 전환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린이 법회나 청소년 법회도 이제 포교사들에게 맡길 때가 왔다고 본다. 출가 승려 숫자도 부족하고 의지도 약한데 차라리 이럴 바엔 이 부분의 포교는 재가 포교사들이 전적으로 전문성(능률급 고용제도)을 가지고 담당하도록 할 때가 된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이 부분까지 무슨 권력이나 기득권을 빼앗긴다는 심정으로 반대할 것이 아니라 불교가 제대로 잘 되어가는 방향으로 개혁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오늘을 사는 불교지도자들의 자세라고 본다. 그동안 양성된 포교사 숫자가 만 명은 넘는다고 생각되는데, 이렇게 양성해서 놀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활용해서 전법포교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미적미적하는 것은 출가 승려들의 고유 권한과 영역을 내 준다는 강박관념에서 주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멀지 않아서 재가 포교사들이 대사회 포교일선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은 시대의 요청이며 한국불교의 운명이 걸린 일 이라고 소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국대 이사장 총장 선출과 관련하여 일련의 사태에 재가불교지도자들이 적극 개입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사태 그 자체의 어떤 해결에 영향력 행사보다는 이제 재가불교지도자들도 불교의 현실문제에 참여하는 눈을 뜨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안 좋은 방향으로 불필요한 재가불교지도자들의 관여나 간섭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전법포교가 미약한 사회 현장부분에 적극 개입하고 관여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하겠는가. 출가 승려들만으로는 전법포교문제를 감당하기가 역부족이기 때문에 재가가 솔선해서 역할분담을 자청하고 나서는 것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니겠나 싶다. 출가승가가 전법포교 모두를 커버할 수만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세속의 사회성 문제에 출가자가 일일이 나서서 치유를 감당하기엔 자칫 출가신분의 본분사로 보아 사회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민감한 부분도 많다. 폭넓은 포교전략을 구사함에 있어서도 그렇고, 더구나 시간이 갈수록 교세가 약해지고 어린이나 청소년 포교는 사각지대가 되어 가고 있어서, 재가 포교사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사실, 본국불교계나 미주불교계에서는 특히 비구니 스님들의 활동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포교문제에서 본다면 자원의 미활용이 아닌가 싶다. 이 분들이 참여해서 활동하려고 해도 충족의 지원책이 마련되지 못해 그 참여공간이 없을 정도로 활동반경이 제한되어 있는데, 한국불교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교세가 약해지고 신도 숫자가 떨어진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원이 있으면서도 활용하려고 하지 않는 옹졸함을 먼저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선 재가 포교사를 청소년 포교에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빨리 강구해서 실천해 나가길 바라마지 않는다. 제 월 김 안 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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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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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