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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한국불교포교 어떻게 할 것인가-12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 LA 김안수 포교사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 청소년포교기구는 종단에서 마땅히 지원자금을 받아 운영될 수 있어야만 한다. 청소년포교기관은 청소년들의 자진 회비 충당만으로는 도저히 꾸려나갈 수 없는 특수 비영리 기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종단이 지원자금을 계속해서 충당하지 못하면 자생적 운영이란 한계에 다다라 멈출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도 비영리법인격 사회청소년단체나 노인복지단체 또는 사회교육기관에게는 비영리기관의 보조지원자금을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한다. 한국에서의 불교와 관련된 청소년기관은 이제부터라도 면세혜택을 받고 있는 수입자원이 큰 몫 관광사찰 또는 종단별로 부과액을 책정해서 무조건 예산편성 몇%정도는 각출해서라도 청소년육성 공용기금으로 편성하고 이를 적절히 활용 운영해 나가야만 희망이 있으리라. 이제부터라도 모든 한국불교기관은 신도들의 각종 불사헌금에서 0.1%정도는 무조건 청소년포교조직기금으로 비축할 수 있도록 자진해서 공금적립기금에 납부하여 누계현황을 살필 수 있도록 편성해 나갔으면 좋겠다. 자금을 가져가서 사용하는 청소년포교단체는 공히 회계의 객관성, 투명성으로 그 실적평가를 통계지수로 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연구비 지원자금과 같은 성격이다. 이렇게 되어야만 청소년포교대책이 순간에 겉돌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으리라 본다. 뒤돌아 보건데, 그간에 한국 불교진흥원은 많은 일을 해낸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미래세대 불교를 위해-청소년포교 대안운동에는 너무 무감각이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진흥자금 사용비율이 10%정도만이라도 계속해서 지급되어 청소년분야에다 바른 불교인식을 위해 투자해 왔었다면, 20년 30년이 흐른 성년으로의 지금쯤의 한국사회는 어떻게 불교를 인식하며 미래를 위한 불교에 헌신을 기울일까하는 궁금증이 감돈다. 6.25동란이후, 줄곧 한국기독교가 청소년층을 겨냥하며, 미국의 선교자금을 용이하게 사용하면서 반세기를 지내온 결과 이제는 이들이 성장하여 오늘의 기독교세의 주역들이 된 것을 보면서, 왜 한국불교에서는 이다지도 청소년포교 대응책을 세우지 못해왔단 말인가. 답답하기 그지없어 이를 언급해 본다. 현재 한국불교계에서 포교처럼 중요한 현안문제는 없을 것 같다. 물론 승가의 자정과 혁신 또한 시급한 문제이긴 하다. 승가가 건실해야 재가불자들은 이 청정승가를 의지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국에서 들려오는 뉴스는 너무나 미주 지역의 불자들을 슬프게 만든다. 타락이라고 보기보다는 이제 아주 노골적으로 영리사업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것도 유흥업에 까지 손을 뻗쳤다는 전언이다. 그럴 바에는 비구대처 분쟁이전, 대처승들이 하고 있던 사업을 그대로 이어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정도다. 불교정화운동으로 승가가 청정해 진줄 알았는데, 이제 다시 왜정시대나 해방직후로 돌아간다면 우리불교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말인가. 팟 캐스트인 ‘정봉주의 전국구 생선향기’를 들어보면 정말 사실일까 하고 스스로 의문이 들 정도로 우리 불교계가 이렇게 썩었나 하는 한탄을 하게 된다. 왜 ‘생선향기’에 대응을 못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의혹 대상에 오른 분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불교를 하고 있는지, 왜 가사를 입고 있는지 스스로 반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시대에 금권이 최고라고는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느낌이다. 이분들이 종단을 좌지우지 하는 지도층이라고 하니 정말 우리 불교계의 앞날이 어디로 향할 것인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여기에다 제2종단이라고 할 수 있는 승가 역시 부패라기보다는 지도력 부재와 대의종권(代議宗權)운영 미숙으로 종단을 나락으로 몰고 가고 있음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한 재가종단들은 자신들이 대승보살불교를 한다는 명분에 전통종단을 넘으려 하고 있고, 제3종단이라고 할 수 있는 모 종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역사도 짧으면서도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던 ‘00종’을 마치 계승한 것처럼 하면서 위상제고에 열을 올리는데, 뭐니 뭐니 해도 한국불교는 전통성과 역사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앞서서 多 종파시대에 대해서 언급한바 있지만, 지금 신생종단으로서 제대로 체계가 잡힌 종단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제 다시 청소년 포교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상에서 우리 한국불교 현실의 한 단면을 진단한 것은 포교와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래도 조계종에서 포교운운 하고 미래세대를 위해서 걱정이라도 하는 종단이라고 여기고 있는데, 군소종단은 아예 미래세대를 위해선 그 포교대응에 설만한 준비도 안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해선 전혀 관심밖에 있다는 것이다. 군소종단은 오직 신도들로부터 시주금 받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신도확보는 원하면서 미래세대를 키우는 문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참으로 후안무치한 소행이다. 청소년 법회가 활성화되려면 이런 군소종단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진전의 가늠이 보인다는 것이다. 전연 시대와 사회와 포교에 책임을 지지 않고 오직 신도들의 시주에만 의지하려는 무임승차를 노리는 이런 자세는 빨리 불식되어야 하는데,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아무리 조계종 같은데서 청소년법회에 열을 올려도 모든 종파가 함께 움직여 주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고 본다. 비단 포교문제만이 아니다. 정법구현을 위해서 뭔가 해보려고 하는데 대부분의 군소 종단에서는 따로 놀고 있다면, 한국불교 전반의 바른 불교 구현은 요원한 것이다. 그나마 계율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종단이 있는가 하면, 계율 같은 것은 아예 관심도 없고 지키지도 않으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나간다면 불교 전체로 봐서는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말하자면 승가의 모든 승려가 다 계율도 지키려 하고 전법포교도 하려는 서원을 세우고 노력을 해야지 어느 종단은 열심히 하고 어떤 종단은 다른 길을 걷는다면 안 된다는 논리이다. 본국에서나 미주 한국불교계에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자기가 소속한 종단이 아니면 잘 굴러 가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는 이야기다. 어떤 종단은 전법포교에 종단의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면서 집중하는데, 어떤 종단에서는 전연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미래 세대인 청소년 포교에 관심을 두고 노력하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불교신자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그래도 20-30년 전에는 어지간한 사찰에서는 청소년 법회를 다 하고 있었다. 본국이나 미주 지역이나 지금 청소년 법회를 하는 사찰은 극소수이다. 법회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지 않고 귀찮고 시끄럽다는 근시안적인 당장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본국에서는 청소년들이 한창 공부할 나이에 사찰 법회에 나올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하든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법회를 열어서 청소년들에게 불심을 심어줘야 하는데, 문제는 사찰에서 첫째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타종교의 경우, 성인신도 보다도 청소년들에게 쏟는 정성은 대단하다. 왜인가. 그들은 미래세대로서 그들의 종교를 이어갈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우리 불교의 경우, 청소년 법회는 거의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미주지역에서도 청소년법회를 꾸려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엿보이긴 해도 대부분 사찰이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안타가운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타종교에 밀리는 상황에서 청소년법회를 사찰이 아니면 어디서 누가 나서서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인지 자못 이해하기 어렵다. 참으로 우리 불교를 위해서는 비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디지털로 불교를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사찰에 와서 직접 체험하고 접해서 승가(사찰)불교와 가까워지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이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사찰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법회를 개설해서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미래세대는 바로 우리 기성세대를 잇는 다음 세대라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고, 이들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바로 10년 20년 후의 건실한 불교를 보게 되리라는 희망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모든 사찰이 청소년 법회를 다시금 살려내야 한다. 그 많은 포교사들을 한가하게 할 일없이 놔두지 말고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월 김 안 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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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5/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