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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한국불교포교어떻게 할 것인가-8 다(多) 종파시대와 포교 김 안 수 포교사

다(多) 종파시대와 포교 한국불교계는 지금 다(多) 종파시대이다. 이런 저런 이름의 종단 명칭이 백 개도 넘는다는 통계다. 왜 이런 일이 벌어 졌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불교정화로 인한 후유증이다. 불교에 들어와서 삭발염의를 한 출가 승려들이 갈 곳은 절밖에 더 있겠는가. 한국불교를 대처화(帶妻化)시킨 것은 일제(日帝)다. 자기들이 대처 불교를 하다 보니, 독신 비구 불교였던 조선불교를 대처불교로 만들어야 했던 콤플렉스다. 갑의 입장인 일제의 불교는 대처불교이고, 을의 입장인 식민지 조선은 청정 독신 비구불교라면 어딘지 모르게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 아니었겠는가. 조선총독부는 조선불교를 대처화(帶妻化)하는데, 정책적으로 힘을 쓰게 되고, 31본산(本山)에서는 조선승려들을 공비생(公費生) 제도를 만들어 일본에 유학을 시키게 된다. 가서보니 승려들의 생활이 너무나 좋아보였다. 너도나도 대처가 될 수밖에 없었고, 귀국해서는 일본식 승려로 자꾸 모습을 바꾸었다. 조선총독부에 만해 한용운은 승려취처를 찬성하고, 백용성은 반대를 했는데, 참으로 견해가 이렇게 서로 상반된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결과론적으로는 백용성의 주장대로 한국불교는 비구승이 정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고 해야 하겠으나, 한편으로는 은처승 등의 문제가 아직도 잔존한다고 볼 것이다. 아무튼 일제가 조선반도에서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에 대처의 길을 걸었던 많은 승려들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시대의 흐름을 깨닫지 못하고 일본식 대처현실에 안주하려고 했다. 이에, 사찰에서 천대받으면서 겨우 참선이나 하고 있던 수좌(首座)들이 있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왜색탈피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해방 후에도 종권(宗權)을 쥐고 있으면서 막강했던 대처 승려들은 자기들이 점유한 본사를 중심으로 현상고착을 하려는 야욕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일부 독신 비구들이 수좌들이 수행할 수 있는 몇 개의 사찰만 비구승들에게 달라고 협상을 했으나, 기득권의 대처 승려들은 모두다 손해 보려는 선심(善心)을 쓰지 않았다. 이에 비구승들은 불교정화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일어섰고,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유시를 발표해서 비구승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비구승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는데, 1962년 비구대처가 화합한 통합종단이 출범했다고 할지라도 대처화된 승려들은 사찰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가 어려웠다. 이미 승가의 대세는 비구승들에게로 기울었다. 밀려난 분들이 갈 곳이 어딘가. 도시로 나가서 조그마한 암자를 세워서 절 간판을 부치고 목탁을 칠 수밖에 더 있었겠는가. 한편 한국불교의 주요사찰을 차지한 비구승들은 숫자적으로 부족한 비구승들을 만화하기 위해서 우선 선입문(先入門) 후교육(後敎育) 체제로 현상을 타개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철저한 교육이 되고, 안정된 승가체제가 형성되었어야 했는데, 종권다툼이 지속되고 사찰재정의 비합리적인 운영 등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고, 그나마 옷을 입었던 승려들이 사찰에서 밀려나면서 사설사암을 새로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불교재산관리법으로, 처음 18개 종파였던 것이 여기저기 개별로 있어온 전통사찰외의 사암들이 이합집산으로 종명을 만들어 사설사암운영이 자유로워지자, 급기야는 백 개도 넘는 다양한 종파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시대에 따른 어떤 불교적 개혁 이념을 특별히 내세워 종지(宗旨)로 하여 종파가 설립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창종(創宗)을 하다 보니, 일사(一寺) 일종(一宗)이 되어 불교계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자, 이런 다 종파시대에 직면한 현실 포교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그동안 포교라고 하면 조계종의 입장에서 포교과제를 다루었다. 다른 종단은 전략적 포교보다도 우선 생존부터 해야 했던 절박함 때문에 관습을 유지할 뿐, 포교란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요행히 어느 정도 사찰건물도 완성되고 나름의 포교로 교세 확대를 강구해보려 하니까, 시대의 흐름이 이제는 사람들이 구습의 종교를 멀리하는 시대가 돼버린 것이다. 이렇다 보니, 포교 이전에 사찰은 생존문제에 다시 직면하게 되고, 사찰이 존(存)이냐 망(亡)이냐 하는 생존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조계종이 아니면 대응 포교문제를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일부 초기불교식 출가종단의 새로운 등장이나 대승을 표방하는 재가종단에서는 자기들 나름대로 포교를 한다고 하겠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불교입장에서 본다면, 조계종 전통이 적통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자하는 것은 아무리 조계종에서 포교를 한다고 애를 써도 이런 군소종단에서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생각이다. 조계종은 새로운 시대와 맞추려는 포교방법에 열성인데, 다른 군소종단들이 구태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길을 계속 걷고 있다면 한국불교 전체의 모습은 쇄신됨이 없이 어디로 향하겠는가. 그러므로 조계종은 군소종단과 함께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 또한 쉽지 않다. 어느 종단까지를 대화종단으로 삼느냐 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실, 수행이나 교육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종단이 몇 개 종단이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겉만 삭발염의 했다 해서 이를 모두 승가구성원으로 착각하고 있는 판국에, 승가란 구분도 식별하기 어려운 작금의 한국불교계의 현실이 된 것이다. 본국불교나 미주불교계나 마찬가지이다. 한국불교 종파별 승가위상과 그 정체성에 따른 포교대안에 관련하여, 가장 시급히 올바르게 구분해서, 타개해야할 현안문제이다. 다른 나라 불교는 이런 문제 때문에 골머리 앓는 것을 보지 못했다. 파가 조금 다르다고 해도 계율 상으로 약간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방불교의 비구들을 보면 대체로 공통점이 많은데, 한국불교의 스님들은 종단이 달라도 겉모양은 조계종 승려처럼 보여서 전연 다른 행동과 습관을 가지더라도 외모로는 구분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조계종에서 사회대중을 향한 포교를 위한 대책을 세워서 이끈다고 할지라도, 다른 종파 스님들이 전혀 이질화된 모습을 보인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승려나 사람들은 한국불교를 오해할 수밖에 없다. 조계종에서 공들여 새 모습의 포교를 하고 있는데, 혹시라도 다른 군소종단에서는 엉뚱한 식으로 포교를 한답시고 불교의 본령을 벗어난다면, 그 결과는 결국 조계종만이 아닌 한국불교 전체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 종단이 다르더라도 포교에 관한한 어떤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지역별로나 중앙에서 초종파적인 지역연합회와 종단협의회가 조직되어 있지만, 정치적인 모임이지 포교나 수행 교육 등과 같은 승가 공통문제에 대해서는 전연 논의가 안 되는데, 이것은 매우 편협한 결사체가 아닌가 한다. 가뜩이나 종교를 떠나고 불교를 떠나가는 시대에, 참으로 모든 불교종파가 협력해서 공동의 현안문제인 포교문제만이라도 같이 연구하고 대안을 찾는 협력의 모습이 아쉬운 것이다. 서로 연구하고 협력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탁마상성의 기회가 되고, 승가의 도리를 벗어나는 일탈행위도 스스로 자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체 호법기능과 자정(自淨)하는 기구를 갖고 있는 종단은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지만, 이런 기구도 없이 마음대로 하는 일부 군소종단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개혁에 당면한 포교를 생각하고 한국불교 전체의 모습을 그리다 보니 이런 문제를 논하지 않을 수 없는데, 참으로 한국불교 전체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현안문제라고 생각해서 몇 자 적어 본 것이다. 제 월 김 안 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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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