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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한국불교포교어떻게 할것인가-2 ' 포교사(법사)들에게 기회를 줘라 ' 김안수 포교사

포교사(법사)들에게 기회를 줘라 우리는 기독교의 선교활동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30년이나 4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사회에 기독교가 그렇게 강하게 뿌리 내리지는 않았었다. 지금은 상황이 어떤가. 말하지 않아도 한국 사회의 종교지형을 너무나 잘들 알고 있다. 이곳 미주 지역을 보라.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쩌면 본국보다도 더 적극적이고 열성적이다. 더 이상 비교하지 않겠다. 문제는 불교 지도층의 관심과 생각의 전환이다. 아무리 포교사가 많아도 이들을 활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솔직히 그동안 본국 불교 종단에 대한 소감은 너무 행정적인 입장에서 지휘감독만 하려고 했지, 포교사들이 일선에서 실제 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많은 포교사를 양성한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일선(종단차원의 각종 포교분야)에서 움직이게 하지 않는다면 전연 포교하고는 관계없는 일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포교사들끼리 어떻게 해보라는 식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동안 종단은 포교사들을 양성해서 어느 정도 외호적인 뒷받침은 받을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도 소수의 지도층 말고는 거의 많은 지도층들이 관심을 두지 않고 방치한 상태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해방이후 우리불교계의 현주소를 살펴보자. 불교정화운동으로 승단을 재건한다는 명분아래 승가는 분열하고 또 종단도 권력 다툼으로 너무나 아까운 시간과 재원을, 올곧게 집중해서 개발에 활용되었어야 될 엄청난 것들이 계속 낭비로만 지속하여 왔다. 한국의 산업개발과 함께 불교의 유휴재산은 시대를 따르며 개간 구축되어, 종단 주체(재가불자와 공동체가 되어 함께) 스스로 치산치수 풍치조성으로 녹지공간의 수행과 문화재 공간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자주적인 노력의 기회마저 잃어버렸다. 도심의 주요 큰 사찰이 온통 도심 상가에 박히어 새로운 모습의 포교당, 그것도 전통 제사불공을 구실로 구태를 벗지 못한 불단을 갖추어야만 하는 양상으로 이미 변모되어 굳어버린 지 오래며, 산간 깊은 곳에 있는 대가람의 절터마저도 사찰 증축 또는 개축에 있어 기와, 석가래, 기둥, 불상, 불단 등에 각각 값을 표기한 시주금 명패를 붙이고 기도하러 온 불자들에게 이를 안내(작년도 한국을 다녀온 미국불자의 회고담)하고 있었다니, 산간 절터도 도심 포교당이나 무엇이 다를 것인가. 고려 초기 난민구제를 위한 균여 대사의 일화가 생각에서 맴돈다. 또 근대불교 지도자 용성스님의 선농기치를 재가불자들에게 활용할 수 있는 기지와 용기도 없는 종단이 아니던가. 어려운 생업에서 갈피를 모르고 있는 속세의 고달픈 불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법당이 법당구실을 잃고 기도불공 드리는 곳으로만 해결책을 삼아온 승단이 아니던가. 중생을 위한 참다운 불공만이 불자로서 행해야 할 일이고 중생을 위하는 길이라고 성철스님께서도 그렇게 간곡히 당부하셨건만,...... 이같이 그러던 가운데 한국불교는 80년 법난을 치루면서 승가와 재가는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고, 94년에 이르러서는 안간힘을 기우린 결국 희망을 안기는 개혁종단이 들어서서 어언 20년이 지났건만, 개혁주체의 본의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그나마 불교교세는 오히려 더 약화되어 있는 실정이 아닌가. 승가공동체 마저도 이제는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선방마저 마지막 보루로서 남아 있질 못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선방 수좌들의 충고 자체마저 비웃게 된 풍토가 돼버린 오늘날 종단의 흐름은, 사판에 의한 판도만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사판이 주류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불교포교가 세속적 판세의 가치기준으로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본연의 승가풍토는 균형을 잃어 흐트러지고 말았고, 점점 더 정치행정 중심 책임 쪽으로만 모든 판세가 바뀐 결과만 낳지 않았는가. 빈곤을 벗은 사판승의 득세로 불신의 자정쇄신만 헛소리로 맴돌고, 시대에 알맞은 탁월한 행적적인 포교의 전략은 이미 상실되어 버린 채, 세인들에게 환영받을만한 대안은 들어나 있지 않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재가포교사를 양성했으면 이들이 종단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종단차원의 운영조직에 직접적인 참여를 감행할 수 있도록 적절한 안배를 늘려 나가야만 하는데, 승가에서는 기회를 주지도 않고 전문성 포교 인력이 부족한 실태이면서도 더구나 유능한 포교사들을 적절히 활용할 수 없는 지경의 범 포교조직 시스템의 난제에 시달리면서도, 아직도 이들에게는 스스로 알아서 개척이나 하라는 식이다. 현재에 처한 불교 성격상 포교는 우선 사찰이나 포교당을 배경으로 해야 하는데, 기독교처럼 거리에 나서서 믿으라고만 외치는 그러한 포교를 한다는 것은 불교 성격상 걸맞지 않은 태도며 방법이라고 본다. 거리에 나가게 하려면 옳은 사고방식과 전법의 방식을 구사할 줄 아는 이들을 종단차원에서 사관생도처럼 별도로 양성해서 책임을 지고 이들을 거리에 나서게 해야 할 것이며, 이들의 생업에 따른 생활급여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그런 제도권이라면 다행스럽게 기독교 이상으로 포교활성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팟 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의 ‘생선향기’를 청취해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이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종단이 난타를 당하면서도 전연 여기에 대한 반격이나 해명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자진해서 종단을 우러러 짝사랑으로만 일관하며, 오직 홀로나마 포교에만 힘써온 일선 포교사들에게는 정말로 맥 빠지게 하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지도층의 각성과 포교에 대한 절박한 인식이 이제는 너무나 중요한 시점에 다다라 있음이고, 종단은 만사에 앞서서 지금 당장 시급한 현안 문제로 계속 다루어야만 한다고 여긴다. 제 월 김 안 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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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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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