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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관리자
Subject   한국불교포교어떻게 할 것인가-9 발편과 근기 김 안 수 포교사

방편과 근기 한국불교는 그동안 방편이란 구실로, 세습신앙을 재원수단으로 끌어들인 채 대중이 계몽되어 있는 것도 모르고 너무 안일하게 이에 의존해온 것 같다. 방편이란 근기(根機)가 열악한 중생을 위해서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에 접근하기 쉽게 낮은 문을 여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영험담(靈驗談) 또는 비유담을 들려주고 불심을 일깨워 구름에 가린 마음을 신앙의 문으로 이끌어 서서히 닦아 나가도록 해서 스스로 자력(自力)으로 수행할 수 있는 근기를 길러 주는 역할이 방편이다. 대승불교권에서는 자력문(自力門)과 타력문(他力門)을 내세우고 있는데, 자력문은 참선이나 간경(看經) 등을 해서 스스로 불교의 궁극적 진리를 체득하게 하는 문이고, 타력문은 정토신앙에 의거하여 염불을 하고 주력을 하고 기도를 하고 뭔가 부처님께 의지하여 가피를 입어서 어느 정도 근기가 생겨서 정법(正法)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타력문의 방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불교의 타력문의 신앙방법이 기독교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인식이다. 더구나 유일신관의 절대권위(전지전능)가 부정된 오늘날 서구사회에선 그런 신관에서 벗어나 이미 퇴색한 신앙방법임을 천명하고 있어, 먹혀들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불교(명상수행)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기도 한 것이다. 나는 이곳 미주사회에서 1987년도 11월, ABC(American Buddhist Congress) 태동이후 미주 각국불교 지도자들 150여명이 함께한 회의(서래사) 자리에서, 북방불교측이 추구하는 대승보살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남방불교측의 주장을 목격한 바 있다. 결국 남방처럼 독신 비구가 있는 승가가 존재할 때 불교의 틀로서 인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중생구제의 방편으로 등장한 출*재가 혼합형 보살신앙 자체를 남방불교측에선 전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북방불교의 큰 틀에 서있는 서래사(대만-불광산 계통)만 보더라도 교민을 상대로 한 보살신앙이 주를 이루고 있음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간과할 수만은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방편을 악용하고 오해해서 엉뚱한 해석을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를 잘못 이해케 하는 것이 된다면, 더구나 기독교식과 다름없는 의존신앙에만 만능처럼 구가한다면 그것이 어찌 부처님께서 근기에 맞추어서 설파해 주신 올바른 방편(예를 들면, 주리반특 또는 육방예경 가르침)이 되겠는가. 또한 일반적 방편은 모두 다 스스로가 행해야 할 팔정도에 이미 들어 있음이 아니던가. 그러나 부파시대의 문제점을 보완한 반야 대승운동은 보살이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6바라밀에 더하여 10바라밀까지, 그래서 당연히 방편바라밀이 없이는 보살활약의 논리가 설 수 없게 된 이치다. 그럼에도 우리들 스스로는 방편적 활약보살로서 변신을 못하면서, 허구한 날 제단에 모셔둔 불보살만 바라다보는 의존신앙만을 강요한다는 말인가. 정작, 정토신앙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방편구사가 붓다의 바른 가르침에 어긋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진정한 보살사상을 구현하는 방편으로 오늘날 현실의 적용에서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실천되는 길라잡이로서 인도되어야만 마땅하다는 주장에서 하는 말이다. 우선, 초기불교연구가들이 이에 대한 오해소지나 왜곡된 행위로서 지적하고 있는 영가천도 위령제식-제사나, 입시합격 발원성취-기도 등을 현대인의 사고의식에서 납득할 수 있는 방편으로 종단 차원에서 새롭게 할 방식으로써 개선이 선결문제인 것 같다. 사원경제의 돈벌이로써 마구 이용되는 제사의식이나, 입시기도 등은 이제 변환되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의식은 소속사찰의 신도에겐 부담감 없이 제공되는 종교의례가 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위령제식-제사는 무상, 고, 무아의 삼특상을 되새기는 종교의식으로 변환하여 집전자와 참석자 모두가 함께 할 의식으로써, 모두 우리말로 바르게 번역되어 함께 읽을 수 있는 독경의 시간으로 신행교육의 장을 병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입시합격 발원성취-기도는 입시수험생이 직접 동참할 수 있는 시간으로 하며, 오직 최선의 노력을 시험공부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을 불보살님 전 맹서하고, 설령 낙오되는 일이 있더라도 차후에 더욱 분발할 뜻을 다짐하는 의지 표명의 장이 되어야할 것이며, 곁들여 언제나 사찰에 와서 그들의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수행공간이 될 수 있도록 사찰 측 배려가 따라야만 할 것이다. 지난 몇 십년간 사찰 측 기도방법이나 환경개선이 불단내부 장엄에만 치우쳐, 보편적 현대인의 감성에 따라 신선감이 있도록 새로 발심할 불자들을 이끌어 드릴 자연경관 노천 불단, 명상 공원, 넓은 마당 법석, 쉼터 공간 마련이 되지 못하면서, 더구나 나이든 신도들만 상대한 것이 젊은 불자 층을 확보 못한 사원운영 방식의 책임이 너무나 많이 누적되어 왔다고 본다. 게다가 조그마한 사설사암의 운영은 의존신앙에만 매이다 보니, 여러 좋은 방편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조차 마련할 수 없었던 처지에, 너무 과도하게 구태의식을 사용한 나머지 이제는 이런 방편마저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온갖 방편이 조작돼서 상상이상의 괴이한 짓을 하는 일부 악덕자들 때문에 불교 전체가 함께 그 피해를 감당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하기야 불교역사를 보면 인도에서도 이런 악덕 출가자들 때문에 불교 전체 출가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지나치면 부족한 것 보다 못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한국 불교가 오늘날 위기에 봉착한 것은 이런 방편 남용도 문제이지만, 문제는 계율을 지키지 않고 독살이가 너무 만연하고 출가 승려들에 대한 통제가 해이한데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출가자의 위상이 반듯하면 사찰내의 모든 의식과 신도들을 상대한 바른 집전도 제대로 정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회에서도 다(多) 종파 시대를 언급했지만, 지금 본국 불교에서 다 종파에 대한 점검을 하는 감시자가 없다. 이런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하는데,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현재 불교 언론으로서는 이런 문제에 까지 들여다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 굵직한 헤드라인 급 기사를 커버하기도 힘든 판국에 이런 세세한 문제에까지 눈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불교계의 지성인들이 이런 문제를 터치해야하는데, 욕먹기 싫고 소득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해 버린다. 모든 종파가 연합해서 이런 감시기구를 만들어서 서로 견제하면서 자중하는 목탁의 기능으로 삼아야 하는데, 어느 종파에서도 이런 민감한 뜨거운 감자 문제는 계륵 취급을 받는 것이다. 포교와 관련해서 논하다보니 이런 문제점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전법포교활동을 한다고 노력을 해도 성과가 없다는 전제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과 대안을 무시해 버리고 오직 성불로 향하는 길, 교리이해 담론만 가지고서 수행을 위한 전법포교에 열을 쏟으려고 할는지 모르지만 이미 시대는 그것만 가지고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를 읽어야 답이 나오는 것이지, 시대를 외면한 포교는 무의미 한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생을 위한 불교가 되어야지, 이 시대의 민중들이 불교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계적으로 바르게 감지할 수 있을 때, 그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포교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2600전의 부처님 말씀이 21세기에 살아있는 법문이 되게 하기 위해선, 부단한 새로운 해석이 요청되는데, 그것은 이 시대의 중생들의 고통이 어디에 있으며, 그들은 무슨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하며 무엇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를 알아야 답을 주는 것이다. 제월 김 안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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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