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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란의 종교가 산책●인도의 종교와 불교 이야기-⑫ 인도독립운동과 분할, 종교적 이유 때문에

  ▲ 인도독립 운동가이면서 무슬림–힌두 연합을 주장했던 아불 칼람 아자드(좌), 변호사 사르다르 파텔(가운데), 마하트마 간디 옹(우측)이 인도 독립운동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다.(1940년)     인도독립운동과 분할, 종교적 이유 때문에    인도 독립운동은 영국이 영국(브리티시)인도를 선언하고 통치하는 순간부터 시작됐고, 특히 무슬림들이 적극적이었다. 1905년 영국인도 정부의 벵골 분할령이 발표되자 이에 대한 반대가 커졌고, 독립운동은 격렬해졌다. 영국인도 정부는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1885년에 창립됐던 정치단체 인도국민회의는 인도독립운동 단체로 급선회 했고, 힌두-무슬림 지도자와 단체가 적극 가담했다. 1920년대 이후에는 마하트마 간디 옹도 인도국민회의파를 통해서 독립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무슬림 지도자들서는 아불 칼람 아자드를 비롯해서 인도 이슬람 대학의 마흐무드 알 하산 교수 등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힌두 지도자들보다는 무슬림 지도자들이 인도 독립운동에 더 적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 수니파 이슬람운동의 산실인 다룰 울룸 디오반디 대학교.   ▲ 칸 압둘 가파르 칸(1890년~1988)과 마하트마 간디 옹.(1930년) 칸 압둘 가파르 칸은 파슈툰인(이란계 아프가니스탄)으로 인도 독립운동가로 영국으로부터의 인도독립을 요구했다. 바샤 칸이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정치인이면서 영적인 지도자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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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불교 - 보검스님의 세계불교의 이해 20


보검스님의 세계불교의 이해 20

서양에서 불교는 꽃 피고 열매를 맺으려는 단계에 진입
불교학술 최고도로 발전, 불교수행 인구 급증, 출가자 다수
서양출신 고승 배출되고, 미래불인 마이뜨레야 출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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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서구불교에 대해서 잠시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불교하면 동양의 종교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21세기 현대불교는 동양뿐 만이 아니고 서양에도 불교가 널리 전파되고 있습니다. 불교 학술적으로는 서구 불교가 오히려 더 활발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교역사를 본다면, 기원전에 불교가 지중해의 그리스나 로마까지 불교가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더 이상 서쪽으로는 지속적으로 전파되지 못했습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서쪽 방향 보다는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으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아시다시피 서구에서는 기독교가 발전하게 됐고, 중동에서는 이슬람교가 득세하게 되었습니다.

불교는 중앙아시아를 경유해서 동아시아로 확장돼서 오늘날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불교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남쪽으로 전해진 불교는 12세기 무렵 동남아시아로 전파되어서 오늘날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는 인도 원형불교의 모습인 남방 상좌부 불교가 그대로 이식되어서 정착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서구에서는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고, 교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초 유럽 기독교 예수회 선교사들이 인도나 아시아에 오면서 불교교리와 전통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회 신부들은 스리랑카 티베트 중국에서 불교를 접하게 되었고, 유럽의 철학자나 종교학자들은 아시아 전역에 불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입니다.

불교가 단순한 종교가 아니고 교리적 철학적 체계를 잘 갖춘 종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와 경쟁자라고 여기면서 연구하게 된 것입니다.  
초기에는 일부 포르투갈 인들은 불교라는 종교는 이교도로서 악마에 의해서 타락한 기독교의 이단으로까지 오인하면서 우상 숭배의 종교로 몰아 부치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나라가 바로 스리랑카였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이로 인하여 승단이 파괴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후에 태국과 버마에서 계맥을 다시 이어와서 승단을 재건하는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유럽 대학에서는 산쓰끄리뜨어와 동양학 연구가 도래하고 불교 문헌에 대한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서양불교 연구가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가 되면 서구인들의 불교인식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고, 기독교 선교사, 학자, 식민지 공무원의 작업을 통해서 서양 지식인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 대한 대부분의 기록은 그것을 허무주의적, 비관적, 우상 숭배 및 이교도 신앙으로 부정적인 관점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서구의 눈 밝은 지성인들은 불교가 매우 과학적이면서 철학적 체계를 잘 갖춘 종교임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시인, 에드윈 아놀드 경은 1879년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The Great Renunciation-)’이란 서사 시집을 발간, 영향력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 시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과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100만부 이상이 팔렸는데, 당시로서는 대단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게다가 서구지식인들에게 기독교가 무조건 불교를 경쟁자로 볼 것이 아니고, 다원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암시를 준 시집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성(靈性)과 신지학(神智學)의 성장은 불교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습니다. 일부 신지학자들은 실제로 불교로 개종하기도 했습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철저한 학술 연구, 출판물 및 불교 문헌 번역이 성장했습니다. 프랑스 동양학자인 유진 뷔르누프(Eugène Burnouf)는 묘법연화경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였고, 크리스티안 라젠(Christian Lassen) 같은 동양학자는 빨리어 문법책을 출판할 정도였습니다. 영국 런던에서는 1881년 토마스 윌리암 리드 데이빗드 (Thomas William Rhys Davids)라는 빨리어 학자가 빨리성전협회를 설립해서 테라와다(상좌부)의 빨리 삼장을 영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인도학자로서 옥스퍼드대학의 막스 뮐러 교수는 동방성전총서(The Sacred Books of the East) 가운데 ‘담마빠다(법구경)’를, 마이클 위고 파우스뵐은 ‘숫따니빠따(經集)’를, 그리고 헤르만 올덴베르그는 ‘붓다: 그의 삶과 교리와 교단’을 번역하고 저술해서 유럽에 불교를 널리 알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한편 이 시대에는 서양 철학자들이 불교에 주목했습니다. 독일 철학자인 쇼펜하우어 (Schopenhauer)는 불교와 다른 아시아 종교에 대해 읽고 그의 작품에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최고의 이상으로 칭찬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나중에 불교가 \"모든 가능한 종교 중 최고\"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작품에는 불교가 무신론적이고 현상주의적이며 반 형이상주의적이기 때문에 \"기독교보다 100 배 더 현실적\"이라고 부르며 그의 1895년 작품 \'반 그리스도\'에서 불교가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북미에 처음으로 도착한 불교도는 1848년 골드러시 때 서부 해안으로 이주한 중국인이었습니다. 1875년까지 샌프란시스코에는 8개의 사원이 있었습니다. 거의 동시에 일본에서 온 이민자들이 하와이 농장과 캘리포니아 중부 농장에 노동자로 도착하기 시작했고, 1893년에 최초의 조도신슈(Jōdo Shinshū浄土真宗)의 승려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공식적으로 북미 불교 포교부를 설립하고 나중에 1899년에 미국불교교회로 이름을 변경했습니다. 미국 초월주의 사상가들은 결코 개종자가 아니었지만 불교를 포함한 동양 종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미국 시인이면서 사상가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년∼1882년)은 힌두교와 불교를 이상적인 초월주의에 대한 기대로 여겼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시인·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년~ 1862년)는 프랑스어 묘법연화경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서양 불교에서 중요한 사건은 1893년 시카고 세계 종교회의였습니다. 일본 불교계의 유명한 승려들이 참가했고, 스리랑카에서는 인도성지복원 운동을 벌인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참석, 불교를 홍보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영어를 구사했기 때문에 청중을 자극하고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비교종교학자인 폴 카루소(Paul Carus)의 요청에 따라 미국 전역을 돌면서 불교를 강연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번째 웨삭(Vesak 부처님 탄생 성도 열반 축일) 행사를 주관 했습니다. 그가 세 번째 미국 방문에서는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 철학의 확립자이면서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년~ 1910년)를 만났고, 다르마팔라의 아비담마(불교심라학) 강연을 들은 제임스는 \"이것이 지금부터 25년 후에 모두가 공부하게 될 심리학이다\"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1897년 D.T. 스즈키(Suzuki)는 서양에서 선불교를 대중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스즈키의 글은 심리학자 신지학자들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태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으로 사회심리학자이면서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이인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1900년~1980년)이라든지, 미국의 시인이자 1950년대 비트제너레이션의 지도자인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같은 서양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국 시인 앨런 왓츠(Alan Watts)와 불교학자인 에드워드 콘즈(Edward Conze)와 같은 인물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저술을 통해 스즈키는 아시아 불교와 초월주의 및 낭만주의를 결합한 선(禪) 모더니즘의 출현에 기여했습니다.

‘불교 모더니즘’과 ‘개신교 불교’라고 불리는 일종의 불교를 촉진했습니다. 이 새로운 불교 담론은 다양한 요소를 포함했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불교가 현대 과학 및 계몽 합리주의와 양립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불교 모더니즘은 초기 불교 가르침의 새로운 해석, 불교를 ‘과학 종교’로 비신화화 및 재해석, 사회 철학 또는 ‘낙관주의 철학’, 평등과 민주주의 강조, ‘활동주의’ 및 사회적 요소를 포함하는 참여불교, 불교 민족주의 지원과 명상 수행의 부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인 현대 서양불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불교는 이제 서양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려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이미 불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면 미국이나 유럽에 가야할 정도로 서구 불교학문 수준은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불교인구 또한 상당히 많고, 이들은 주로 수행위주의 불교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서양인들이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숫자도 상당합니다. 이제는 서양출신으로 상좌부의 마하테로(대장로)나 선불교의 조실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미래불인 마이뜨레야가 출현했다고 하면서 새로운 불교운동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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