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HOME| 공지사항| 사이트맵
해동연한 아카데미 해동연한 아카데미 해동경전 해동불교대학 선불교 부설기관/웅변
1 2 3

 Total 95articles,
 Now page is 2 / 5pages
View Article     
Name   관리자
Subject   재가불교시대를 열자!




출세간불교는 그대로 놔두고 세간에 있는 신도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이 생활불교인데 과연 우리는 이 취약할때로 취약한 생활불교를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 일 입니까?

우리는 두가지 불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오랜 전통과 제도적으로 잘 정비되고 고원한 출가자 불교이고, 다른 하나는 고원하지도 못하고 제도적으로 미약한 수행틀 속에서 여법하게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는 재가자 불교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수행목표나 수행 환경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신앙 형태를 보면, 재가신도가 출가자를 따라가는 형태인데, 그래서 그런지 신도가 현실생활로 돌아오면 딴사람이 됩니다. 절에 갈때와 올때의 수행생활에 단절이 너무 확연 합니다. 각자 자기 나름의 판단으로 여러가지 수행 형태를 보이나 거의가 무속적 신앙과 혼재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극복 하자는 것 입니다.

재가자 불교 신행의 재건을 위해서, 일 하면서 불교정신의 삶을 자각 할수 있는 사람은 재가자 밖에 없습니다.
재가자도 부처님 자녀입니다. 충분하게 이 일을 감당할수 있어야 합니다. 다같이 지혜를 모으고, 여러가지 신앙프로그램을 개발하자는 것 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출세간 불교 위주로 운영 되고 있는 기성 종단에다가 아무리 재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불교를 운영 하자고 해도, 너무 경직되어 있어 그것을 받아드리지 않기 때문 입니다.

종권 다툼에만 혈안이 되어 스님들에게는 파벌만 있고 신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신도들에게는 종권을 좌우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걸 잘 아는 스님들 입니다.

스님들만을 승보로 예경해야 되는 현실에서는 신도들 문제는 오직 스님들에게 의존해야만 되는 추종자일 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은 당신들 수행처만 잘 관리하면 그만입니다. 중생쪽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스님들이 진정 해야 할일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활 가운데 실천 해 내고, 이웃에게도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며, 신도간에, 서로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 입니다.

소위 말해서 현대 사회에서 신자들의 예불 참례와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집회를 가장 하기 좋은 일요일을 택하여 우리도 생활속에 설법이 살아 숨쉬는 불교를 하자는 것인데, 이런 중요한 일을 안하면 생활 불교는 누가 지도해야 하는 겁니까?

지금의 삼보는 스님들만을 위한 삼보 입니다. 재가 신도들로부터 추앙만 받아야할 대상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삼보는 있어도, 중생들이 절실하게 바라는 삼보의 모습은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생활 가운데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바르게 살수 있고, 어떻게 하면 이를 실천할 수 있는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 해 주는 삼보관 입니다. 훌륭히 발전할 수 있는 모델을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성 종단에서는 도대체 왜 이를 실천하고, 뒷받침하고, 제도화 하지 않는 것일까요?

사설선원을 조계종에 편입시키려는 욕심은 부리면서, 재가자가 하려는 선원운영 방식은 가로막고 왜 못하게 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면서까지, 왜 이다지도 재가자 중심의 사찰 운영은 어째서 안된다는 것입니까?

오늘날 우리 불교가 발전 하고, 불자가 이 시대의 중추적 역활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 길(재가참여불교)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 내어야만 할 길 입니다. 스님들이 이 길을 열지 못하는 이유를 알수 없습니다. 참선 수행 때문에 조용한 산중에서 독야 청정 할수밖에 없기 때문 입니까? 간화선 만을 주장하는 고원한 입장이라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 것 입니까?

그렇다면 더욱더 그 잘못 됨을 개혁해야 하지요? 이제는 신도들이 불교와 스님들의 문제를 걱정 하고, 깊히 고민하는 판국이 되었습니다. 선후가 전도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나 관념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아도 불법을 바르게 알고 이를 바르게 실천하는 신행불교를 모르는 오늘날의 불교 현실에서 어떻게 불교가 발전 할수 있겠습니까?

초기불교를 보면, 초기불교에서는 그 당시에 합당할 수 있는 출가자 중심의 불교였다는 것은 인정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시대는 출가자방법의 불교만 가지고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넓게 보편적으로 사회에 적용하는데는 한계에 다다르는 측면이 있습니다.

초기불교 당시 인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분 제도하에서는 누구라도 불교라는 진리를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는 출가자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신분 제도가 사라진지 오래고, 또한 종교자유가 허용된 민주적인 사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자 제도만을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지금은 다시 초기 부처님의 불법홍포의 정신을 살리면서, 재가자 중심의 불교도 마음껏 펼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현재의 불합리한 종단 제도도 바뀌어야 하지요.

이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출가자를 위한 불교는 재가자 불교의 큰 틀안에 있는 특수한 수행공간으로써 수준 높은 과정으로 재편해서 놔두면 그만 입니다. 앞으로는 재가자 불교 하나로 모든 제도를 통일해야 할것입니다.

불교가 다시금 활발히 살아나기 위해서는 어쩔수없는 불가피한 현실입니다.
새로운 대승운동이라할까 신도운동이라 할까 이것을 시작할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신도들에게 "불교의 체계적 이해"가 급선무입니다. 진짜 불교가 무언지 불교의 근본 사상이 무언지를 알고 알려야 합니다.

왜그런가? 그동안 선불교 수행으로 일관하면서 사회적 적용 기능에는 미치지 못하면서도 참선병에만 물들은 출가위주의 스님들이 재가자에게도 참선만 하면 된다고 막연하게 가르친 관계로 재가신도들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넓게 펼치지 못하는 편협된 눈먼 봉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래 절에 다닌 신도들에게 불교를 물으면 아무런 답도 못합니다. 그저 자기만을 위한 화두 참선, 관세음 기도, 기복 예불 이런 차원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신도들은 나는 당당한 불자요 하고 자신있게 나서서 사회적 안목에 맞서서 사회를 계도할 수 있는 전법포교에는 나서지를 못하게 된 절름발이가 된 것입니다.

그것 뿐만 아닙니다. 게다가 신도들이 불교가 뭔지를 제대로 알고 스스로 생활 가운데서 불법을 실천할수 있는 자생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런 정신무장 자체가 재가자에겐 필요한 것으로 되어 있지 않으므로, 전무한 상태입니다.

일찌기 모든 스님들이 참선 법문이나 한문 독경만 하지 말고, 신도들의 수준으로 내려와서 부처님 가르침을 폭넓게 펴 나갈 수 있도록, 신도교육을 체계적으로 해 왔더라면 이 지경은 아니 되었을 겁니다.

이제는 이런 병폐를 고치는 스님들이 진정한 도사이고, 훌륭한 스님으로서 인정을 받는 때가 된 것 입니다. 이제는 절에 찾아오는 신도만 맞이하는 스님들은 도사도 지도자도 큰 스님도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는 우리들의 생활 현장까지 내려와서 신도들과 더불어 활약 하시는 스님입니다. 재가신도들이 하루속히 타 종교인에까지 불교의 진리성을 체계적으로 포교 할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도들이 전반적으로 능력을 갖추어야 불교가 살아납니다. 신도들이 스님들 뒤를 하늘 쳐다 보는 격으로 막연하게 따라 가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불교가 출가자 중심의 불교가 아니라 재가신도와 함께하는 불교가 되도록 스님들의 지도력이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종단에서는 스님들의 이런 노력을 과감히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종책을 써야 합니다.

모두가 출세간 불교만 따르라고 한다면 그것처럼 비 현실적인 불교가 어디 있읍니까?
신도들은 스님들을 쫓는 신앙만 있으면 되고, 불교란 전적으로 스님들만의 전유물로 되어야만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스님들이 출세간에 있는 것은 공부를 속속들이 많이 해서 지혜에 있어서나 공덕에 있어서 지도자가 되기위함이지, 생활을 등지는 불교를 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생활속에서 불법이 살아나야지 산속의 수행처에만 불교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재가자가 활동할 수 있는 불교가 중심이 되고 이를 위해서 출가 스님들이 지도자가 되는 것이 순서 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대할수 없다면, 삶의 현장에서 불심이 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우리(재가불자 스스로)가 이일을 해 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스님들이 제 정신이 들 때까지 어쩔 수 없습니다.

안되면 우리들(재가자들)이 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 대신 해야합니다. 한번 해 봅시다. 우선 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소그룹 운동을 하고, 그것들을 연대해서 생활불교가 사회 곳곳에서 실천되도록 노력 합시다. 그래서 출세간불교는 화두공부 중심이 되고, 세간불교는 생활실천 중심의 불교가 되어 서로 보완하며 발전해 나가는 구조인들, 불교 근본정신에서 볼때에 무슨 문제발생의 상관이 되겠는지요?

이 생활 불교 운동은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신도들 자력으로도 얼마든지 가능 하고, 이와 같은 불교 운동의 파급이나 그 효과는 얼마든지 기대 가능 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시대는 재가자 불교 시대가 열리도록 다같이 노력 합시다.

네티즌 바라밀 수행자



​​


 Prev    사면과 개혁
관리자
  2015/07/27 
 Next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관리자
  2015/07/17